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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외교력 시험대 오른 사르코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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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니콜라 사르코지(사진) 프랑스 대통령이 첫 외교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무대는 4년째 인종 학살과 같은 반인륜적 범죄가 계속되고 있는 아프리카 수단의 다르푸르다.

사르코지 내각의 베르나르 쿠슈네르 외교부 장관은 지난해 29일 다르푸르 사태와 관련, '인도주의 통로'라는 새로운 제안을 내놓았다. 수단 인접국 차드에서 시작해 내전 지역인 다르푸르로 이어지는 식량 보급로를 만들자는 것이다.

쿠슈네르의 발언은 미국과 중국 두 강대국이 다르푸르 사태를 두고 날카롭게 맞서고 있던 묘한 시점에 나왔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은 이날 수단에 대한 경제제재 확대를 발표했다. 부시는 수단 국영 석유회사를 포함한 31개 기업이 미국과 금융 거래를 하지 못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군의 돈줄을 전면 차단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다.

그러자 유전 개발 사업 등으로 수단 정부와 긴밀한 관계인 중국이 즉각 반발했다. "경제제재는 다르푸르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 것"이라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이런 가운데 쿠슈네르는 인도주의 통로를 만들기 위해선 국제사회의 협력이 필요하다며 중국을 직접 거론했다. 이는 지난주 사르코지 대통령이 후진타오 주석에게 "중국 없이는 국제사회에서 해결되지 않는 문제가 너무 많다. 양국이 협력을 공고히 하자"고 말한 것과도 통하는 대목이다.

그러나 프랑스는 미국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외교부 대변인은 30일 미국의 경제제재 조치에 대한 프랑스 정부의 입장을 묻는 질문에 "미국의 발표를 잘 메모해 뒀다. 향후 검토해 보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국제 문제에서 대놓고 미국을 비난하곤 했던 전임자들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었다. 프랑스는 '인도주의'라는 해결책을 통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조정자 역할을 하며 목소리를 내겠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나 이를 위해서는 국제사회에서 프랑스 지지 세력을 만들어야 한다는 점과 통제 불능 지역인 다르푸르에 400㎞나 되는 식량 보급로 건설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등의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파리=전진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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