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기업도 미국인이 대주주면 정부 상대로 국제중재 신청 가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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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국내 기업이라도 미국인이 대주주인 회사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규정된 투자자-국가제소(ISD) 조항에 따라 정부의 행정 처분에 대해 곧바로 국제 중재를 신청할 수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31일 산업자원부에 따르면 투자 분야를 규율하는 한.미 FTA 협정문 11장 16조는 투자자에게 상대국 정부의 차별적 규제 등으로 피해를 보았을 경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는 물론 자신이 직.간접으로 소유하거나 지배하는 법인을 대신해서도 국제 중재를 제기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미국 내 투자자는 물론이고, 미국 기업의 한국 내 현지법인.설립 기업, 미국인이 주식시장 장내 매수를 통해 소유.지배하게 된 국내 회사도 미국 본사나 미국 투자가를 통해 국제 중재를 신청할 수 있는 것이다.

산자부 김필구 투자정책팀장은 "미국 본사(대주주)를 통해 국제 중재를 제기하려면 국내 법인이 동의서를 제출하는 절차를 거치도록 규정하고 있다"면서 "개방형 통상국가인 한국에서 미국 본사를 통해 ISD를 제기할 사안은 현실적으로 많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법률가들은 국내 정부의 행정처분에 대해 국내 기업조차 국내 법원에 소송을 내지 않고 곧바로 국제 중재로 몰고 가는 길을 터줘 국내 소송 체계에 혼란이 올 수 있다고 우려한다. 수륜법률사무소의 송기호 변호사는 "법적으로 한국 기업인 회사가 정부의 규제에 대해 국제 중재로 가져갈 수 있다는 것은 기존 행정소송 체계가 흔들릴 수 있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윤창희 기자

◆투자자-국가제소(ISD)=외국인 투자자 보호를 위해 한.미 FTA 협정을 포함, 최근 대부분의 FTA에서 규정하고 있다. 외국인 투자기업이 정부의 차별적 행정처분으로 피해를 볼 경우 세계은행 산하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등 국제 중재 기구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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