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계 승단제도 개선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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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바둑계의 승단대회란 유창혁왕위나 7관왕 이창호도 단이 낮기 때문에 7, 8단등 고단소문 「접히고」두어야하는 묘한 대회다.
승단대회는 갑조(5∼8단)·을조(초단∼4단)로 나뉘어 봄·가을로 열린다. 갑조 최저단자인 유·이 5단은 6단에게 흑을 들되 덤5집반이아닌 덤4집을내고, 7단에겐 흑으로 덤2집, 8단에겐 정선으로 둔다.
유·이5단은 지금 자타가 공인하는 최강자들인데 거꾸로 접바둑을 두고 있으니 거의 전승하는 것은 당연하다. 이들에게 승단대회는 통과의례와 같아 최단코스로 9단이 될 것이란 사실을 의심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여기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문제점은 과도한 대국 때문에 체력 소모가 극심한 두 사람이 1년에 10국씩 치르는 승단대회에 꼭 시달려야 옳은가 하는 것이다.
이 5단은 지난해 84국, 유5단은 78국을 두었다. 일본 바둑 관계자들은 『정상급의 대국으론 살인적』이라며 두 사람이 세계대회에서 기대 이하의 성적을 내는 이유를 여기서 찾았다.
지난 봄 승단제도 개선때 한국기원에선 유·이두 5단을 겨냥해『저단자가 빅 타이틀 한개를 딸 때마다 1단씩 승단시키자』는 제안이 나왔으나 찬반이 팽팽해 뒤로 미뤄졌다.
대신 동양 3국중 가장 까다로운 승단 규정이 약간 완화됐고만60세가 되변 1단 승단이란규정이 첨가됐다.
지난 1,3일 제68회 추계승단대회를 치른 한국기원은이 골치아픈 문제를 논의조차하지 않았다.
한국의 승단제도는 가장 까다롭기에 단의 권위도 그만큼 높다. 82년 9단 1호가 된 조훈현은 입단부터 9단까지 20년이 걸렸고, 조남철9단은 2점 접바둑까지 두어야 했던 과거의 비합리적 제도 탓에 20년간 8단에 머물러야 했다. 서봉수는 16년만에 9단이 돼 이 방면의 최고기록 보유자. 현재 승단대회 참가를 면제받는 9단의 수는 단 7명으로 일본 51명, 중국 8명에 비해 가장 적다.
일본의 예를 볼때 조치훈은 13년만에 9단이 됐고 이시다(우전방부)는 8단때 빅 타이틀을 따내 추전으로 9단이 되는 바람에 11년밖에 걸리지 않았다. 중국은 7단부터 전업기사(프로)이기 때문에 일단 전업기사가되면 7단을 받는다. 운위평은 곧장 9단을 받은 케이스.
이와 견줄 때 유·이5단은 특혜는 고사하고 타이틀 보유자가 접바둑을 두는 수모(?)를 겪고 있는 셈이지만 일부주장처럼 한국 단의 권위를 과시하는 효과도 없는 것은 아니다. 연전 일본 시사잡지『문예춘추』에는 5년후 일본기원의 9단이 1백명을 넘어선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런 헐값의 9단이 일본 바둑을 쇠망의 길로 이끌 것이라는 비판이 실린 적이 있다. 이런 여러 측면 때문에 한국기원은 승단규정을 놓고 장고를 계속할 뿐 묘수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빈번한 세계대회를 고려할 때 대표선수격인 유·이5단의 짐을 덜어줘야 한다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선배들이 다 겪어온 통과의례를 무시하고 이 두 사람에게 특혜를 줄 때 애써 지켜온 한국단의 권위가 빛을 잃는다는 주장도 옳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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