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테두리내 최대 관용/김보은양 항소심 집유선고 해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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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원칙론」 「정상론」사이 고심… 무죄는 불인정/존속 살인범엔 이례적 판결
자신을 12년간이나 성폭행한 의붓아버지를 살해한 김보은양에게 집행유예를 선고한 이번 판결은 사적 구제를 금지하는 법의 「원칙론」과 성폭행 피해자에 대한 「정상론」 사이에서 고심하던 재판부가 법의 테두리안에서 최대한의 관용을 베푼 것으로 볼 수 있다.
즉 법의 원칙을 존중하되 김양이 이번 사건의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는 점을 참작,김양을 무죄가 아닌 집행유예로 하는 선에서 타협점을 찾은 것이다. 그러나 계획적인 살인범으로 인정되고도 심신미약 등 특별한 감경사유없이 집행유예를 선고받은 것은 지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재판부는 존속살인범에 대해 집행유예가 선고된 전례가 없어 고심끝에 일본 대법원 판례에 근거,김양을 집행유예로 선처했다는 후문이다.
김양은 그러나 구형량이 10년 이상이기 때문에 즉시 석방은 안되며 보석을 통해 풀려날 수 있게 된다.
이번 판결로 20여년전 자신을 성폭행한 옆집 아저씨를 살해하고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풀려난 지난해의 김부남씨 사건에 이어 성폭행 피해자에 대해서는 최대한 정상을 참작하려는 법원의 노력이 엿보인다.
변호인측은 이번 사건을 ▲우발적인 범행인데다 ▲정당방위와 과잉방어로 보아야 하므로 무죄라고 주장했었으나 재판부는 변호인측의 항소이유를 모두 인정치 않았다.
재판부는 『김진관군이 사전에 흉기를 준비한데다 범행후 강도로 위장하는 등 당시 정황으로 미루어 계획적인 범행으로 볼 수 밖에 없다』며 변호인측의 주장을 인정치 않았고 정당방위 및 과잉방어 부분에 대해서도 『정조가 유린되고 행동의 자유가 제한받은 점은 인정되나 방위의 정도가 사회적으로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행위라고는 도저히 볼 수 없다』고 말했다.
즉 재판부는 이번 판결을 통해 아무리 성폭행의 피해자라 할지라도 반사회적인 살인이라는 행위는 용납되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
또 항소심에서 새롭게 제기된 두 피고인에 대한 정신감정결과는 피고인들에 대한 직접 면담을 통하지 않고 간접자료를 기초로 했다는 이유로 채택되지 않았다.
이번 재판에서 김양에게 집행유예가 선고된 것은 김양이 소극적으로 범행에 가담했고 성폭행의 직접 피해자인 점이 참작됐다는 것이 재판부의 설명이다.
한편 「김진관·김보은사건 공동대책위원회」측에서는 선고직후 『두 피고인들의 행위가 정당방위이므로 무죄가 선고돼야 한다』고 주장,대법원에 상고하겠다고 밝히고 있다.<남정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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