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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 황진이 … 그녀는 혁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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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황진이-.

교양과 관능을 함께 갖춘 여인. 시서화(詩書畵)에 능하고, 시대와 남성 상위를 한껏 조롱한 여인. 여배우라면 누구든 탐낼 만한 배역이다. 장희빈.성춘향과 함께 한국의 대표적인 여성 캐릭터이기도 하다.

실제 황진이는 수차례 영화.드라마.소설로 옮겨졌다. 당대의 미녀들이 황진이를 연기했다. 영화에서는 육체파 도금봉의 '황진이'(1957)가 원조다. 강숙희 주연 '황진이의 일생'(61)에 이어 서구형 미인 김지미가 '황진이의 첫사랑'(69)을 연기했다. 가장 차별화된 황진이는 86년 장미희 주연, 배창호 감독 연출의 '황진이'다. 여기서 황진이는 비로소 기녀나 요부의 틀을 벗고 방랑하는 예술가.자유혼으로 그려졌다.

TV에서는 82년 MBC '여인열전' 이미숙의 바통을 지난해 하지원(KBS '황진이')이 이어받았다. 김탁환 소설 원작 드라마다. '대장금' 식 수련과 경쟁이 강조돼 보다 입체적인 황진이라는 평을 받았다. 그리고 드디어 송혜교다.

6월 6일 개봉하는 '황진이'는 외견상으론 가장 강력하고 도발적인 황진이다. '접속'으로 90년대 충무로에 새로운 감성을 수혈한 장윤현 감독, '브라운관의 꽃' 송혜교, 북한의 대표작가 홍석중 원작이 만났다.

북한 소설을 처음 영화화한 데다 제작비 100억원의 대작이다. 금강산의 비경도 카메라에 담았다. 홍보문구도 귀를 끈다. '나는 세상이 우습다' '16세기에 21세기를 살았던 여인'이다. 이쯤 되니 불황에 빠진 충무로의 구원투수가 돼 달라는 주문이 절로 나온다.

여기서 황진이는 반상이 엄격한 시대를 뛰어넘는다. 양반가 별당 아씨로 살아온 자신이 실제는 몸종의 딸이고 집안에서 내쳐질 처지가 되자, 스스로 박차고 나와 색주가에 뛰어든다. 그리고 보란 듯이 양반 남성들을 조롱한다. 스스로 기녀의 운명을 선택하고, 첫 남자를 선택하는 여자다. 황진이의 연인인 노비 놈이(유지태) 역시 유토피아를 꿈꾸는 혁명가적 인물. 시대와 신분질서를 넘는 반역의 황진이다.

그러나 실제 영화는 참 이상할 정도로 지루하다. 이토록 굴곡 많은 황진이의 삶을 다루면서도 긴장감이 없다. 140분 러닝타임이 버겁게 느껴질 정도다.

운명의 극적인 계기와 애절한 로맨스조차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충분히 극적인 소재지만 원작의 무게감을 차곡차곡 스크린에 쌓아올린 느낌이다. 100억대 제작 규모, 화려한 비주얼에도 맨송맨송 매력 없는 영화가 되고 말았다. 파격적인, 진보적인 황진이의 해석에만 집착하고, 드라마의 완급 조절은 도외시한 결과다. 단 사극에 첫 도전한 송혜교는 무난한 신고식을 치렀다. 평소의 앳된 이미지 대신 완숙한 면모를 보였다. 미술감독은 패션 디자이너 구호, 음악은 원일이 맡았다. 15세 관람가.

양성희 기자

주목!이장면 자신의 신분을 알기 전 황진이가 우연히 기녀들의 상여와 마주치는 장면. 여느 상여와 달리 순백색 꽃 장식이 달린 상여에, 상여소리도 색다르다. 색주가 기녀들이 죽으면 고달팠던 삶을 마친 것을 축하하는 뜻에서 오히려 흥겨운 노래를 불러준다는 설명이다. 슬로 템포로 보여지는 상여 행렬이 황진이의 운명을 예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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