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리 맴도는 「관권선거」 수사/완강한 부인·「반발」로 주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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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상층부 수사 여론에 촉각/공소시효감안 수사속도 조절 인상
한준수 전 연기군수 구인과 함께 급진전 양상을 보였던 관권개입부정선거 폭로사건 수사는 추석연휴기간중 소환조사를 받은 이종국충남지사,임재길민자당 연기지구당위원장 등 핵심관련자들이 혐의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며 반발하고 나서 막바지 진통을 겪고 있다.
특히 임 위원장은 검찰에 출두하면서 『부정사실이 있으면 검찰수사로 명명백백히 가려내야지 민심수습이나 대외용으로 나를 희생시키려는 움직임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또 이 지사는 공개적인 발언을 자제하고 있으나 주변인사들은 『만약 이 지사를 구속할 경우 정부·여당은 연말 대선에서 1백만 공무원과 그 가족들의 표를 잃게 된다는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노출하고 있다.
이와 관련,충남도내 시장·군수 20여명은 12일 회의를 갖고 『선거지침서는 연기군에 국한된 것』이라고 밝혀 도정책임자에 대한 사법처리라는 검찰의 기존방침에 우회적으로 반대의사를 표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수뇌부는 『공무원들이 수사에 집단반발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내심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열흘앞으로 다가온 공소시효(23일 자정)와 당사자들의 엇갈린 진술,공무원들의 반발기미에도 불구하고 핵심인물들에 대한 사법처리로 사건을 종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이는 상태다.
검찰은 우선 이 지사의 경우 격려금이라는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선거전인 3월15일 한씨에게 1천만원을 준 사실을 「시인」한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비록 이 지사의 「방어」가 만만치는 않지만 돈을 받은 한씨가 선거자금이라고 주장하고 있고 시기가 선거일 직전이며 규모도 통상적인 격려금 수준을 훨씬 상회한다는 점에서 국회의원선거법 위반혐의를 적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임 위원장에 대해서도 2천5백만원 수수사실은 계속 부인하고 있지만 지난해 1월 지역주민을 청와대에 방문토록 주선한 행위는 당시 임씨가 출마의사를 가지고 있었던 사실만 입증된다면 역시 국회의원선거법 위반혐의로 처벌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검찰은 두 사람에 대한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충남도·연기군 관련공무원들을 상대로 연일 방증수집작업을 벌이고 있으나 대체로 관권개입 사실을 부인하고 있어 완벽한 물증을 확보하기까지는 다소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또 선거전 이 지사를 통해 한씨에게 건네진 1천만원권 수표를 발행한 대아건설대표 성완종씨도 자금제공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있는 상태.
검찰은 이 부분에 대해서는 수표유통경로를 철저히 추적,진위를 가리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나 잘못 건드릴 경우 뜻밖의 정치자금 파문으로 번질 가능성이 있어 소극적·형식적인 확인작업에 그칠 공산이 크다.
이번 사건 수사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한박자 늦춰지고 있는 배경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너무 일찍 이 지사가 구속될 경우 공소시효전까지 「윗선」에 대한 확대수사를 요구하는 여론에 시달릴 것을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도 설득력있게 나오고 있다.
이와 함께 한씨가 2차 양심선언에서 폭로한 관계기관대책회의의 국회의원선거법 위반부분에 대해서 검찰이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은 전국적인 관권개입 선거문제를 섣불리 건드릴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결국 검찰은 정치권의 움직임과 여론의 추이를 관망하면서 이 지사 등 핵심인물들을 공소시효전까지 사법처리하되 한씨가 폭로한 내용중 극히 일부분에 대한 책임만을 물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예상된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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