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장 허무니 편견도 와르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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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의 가오초등학교와 혜광학교 사이에 있던 담장이 헐리고 설치된 산책로로 학생들이 자유롭게 드나들고 있다.대전=김성태 프리랜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과 차별을 없애기 위해 학교 담장을 허물었습니다."

28일 오후 대전시 동구 가오동에 있는 혜광학교(정신지체 장애인 학교)와 가오초등학교 경계 부지. 가오초등학교 박지하(54) 교장은 두 학교를 가로막았던 담장을 없앤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는 자작나무.주목.영산홍 등 700여 그루가 작은 숲을 이루었다. 나무 숲 사이에는 산책로와 10여 평 규모의 미니 광장, 어린이를 위한 모래사장도 조성됐다.

학생들은 조경공간 중간에 만든 통로를 이용, 양쪽 학교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가오초등학교 학생들은 혜광학교 잔디운동장에 가 공도 차고 놀이터에서 논다.

그러나 4월까지만 해도 이곳의 풍경은 딴판이었다. 이곳에는 두 학교를 나누는 2m 높이의 철제 담장이 흉측스럽게 서 있었다. 담장 밑 도랑에는 쓰레기가 쌓여 있어 악취도 진동했다.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에 대한 단절을 상징하는 모습이었다. 하지만 최근 담장을 헐어 지금은 단절을 찾아볼 수 없다. 이곳에는 두 학교 말고도 가오중학교와 대전맹학교(시각장애인 학교) 등 네 곳의 학교가 담장을 사이에 두고 각각 붙어 있는데 이 담장도 올해 말까지 철거된다. 일반 학교와 장애인 학교가 담장을 헐어 마음의 벽도 없애기로 한 것이다.

◆ 담장을 헐어 열린 공간으로=담장 허물기는 가오초등학교 박 교장의 관심과 노력 덕에 이루어졌다. 지난해 9월 개교와 함께 부임한 그는 4개 학교가 서로 철제나 콘크리트 울타리로 가로막혀 있는 것을 보고 안타깝게 생각했다. 담장 때문에 장애인 학생 300여 명과 비장애인 학생 700여 명이 서로 다른 곳으로 드나들었다. 게다가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4개 학교를 사방에서 에워싸고 있어 담장은 흉물처럼 보였다. 올해 안에 이 일대에는 4100여 가구, 1만3000여 명의 주민이 입주한다. 이 일대는 원래는 한적한 도심 외곽이었다. 여기에 1985년 가오중학교가 들어섰다. 이어 대전맹학교(88년).혜광학교(95년).가오초등학교(2006년)가 이곳에 입주, 한 지붕 네 학교가 됐다. 이들 학교는 모두 공립학교다.

박 교장은 "벽을 허물고 서로 마음을 열면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들 모두의 인성교육에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해 담장 없애기에 나섰다"고 말했다. 그는 담장을 헐고, 공원이나 산책로 등을 만들면 학생은 물론 인근 아파트 단지 주민들에게 훌륭한 휴식공간도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박 교장은 우선 마주보는 혜광학교 김유광 교장을 찾아가 "답답하게 보이는 담장을 헐어 아이들에게 열린 공간을 만들어 주자"고 제안했다. 김 교장은 흔쾌히 응했다.

박 교장은 이어 4개 학교 교장단과 학부모대표 등을 한자리에 모아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고 협조를 요청했다. 학부모대표회의도 수시로 열어 학부모들을 설득했다. 그는 "장애아와 비장애아들이 서로 어울리고 같이 교육받으면 장애아에 대한 편견은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아이들 인성교육에도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다.

가오초 학부모 대표 김미정(42.여)씨는 "학부모들도 처음엔 반대했지만 교장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동참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 교장은 이어 대전시와 동구청에 지원을 요청해 예산을 지원받았다.

◆ 어떻게 달라지나=이미 헐린 혜광학교와 가오초등학교 사이 담장을 제외하고 나머지 400m 담은 올해 말까지 철거된다. 담장이 헐리면 5만8000㎡(1만7500여 평)의 공간이 생긴다. 이곳에는 체육시설.산책로.휴식공간 등이 들어선다. 이팝나무.단풍나무 숲을 꾸미고, 우레탄 트랙과 잔디광장 등의 시설도 갖춘다. 이들 공간은 학생은 물론 주민들에게도 개방된다.

장애아와 비장애아 간 통합교육도 활발히 추진된다. 장애 학생과 비장애 학생이 모여 인형극 등 각종 공연도 관람하고 학습발표회.체육대회도 함께 치른다. 가오초등학교 6학년 서동진군은 "담장이 있을 땐 장애 학우들이 이상하게 보였지만 지금은 괜찮다"며 "장애 학우들과 얘기도 하고 잘 어울리게 됐다"고 말했다.

대전=김방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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