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메리 크리스마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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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예수님이 태어나신 크리스마스 주간이다. 예수님은 과거를 회개하고 현재에서 사랑하며 미래에 희망을 두는 삶의 위력을 보여줬다. 세상엔 그런 가치를 도무지 믿을 수 없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많다. 성공한 사업가 스크루지도 그 중 한명이었다. 그의 신앙은 돈이었다. 게으르고, 돈 좀 생기면 펑펑 낭비만 일삼는 인간들을 그는 참을 수 없어 했다. 도대체 크리스마스가 자기들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인가. 크리스마스 전날 사무실에 나타나 "메리 크리스마스"를 명랑하게 외친 조카한테 독설을 퍼부은 것도 그 때문이었다.

스크루지는 "즐거운 성탄절이라고? 시궁창 쥐처럼 가난한 네 놈이 무슨 즐거울 건더기가 있다고 그런 소릴 지껄여"라고 쏘아댔다. 그렇다고 돈많은 스크루지가 즐거운 것은 아니었다. 인색하고 퉁명스럽고 무정하고 완고했다. 그에겐 거지들조차 접근하지 않았다.

스크루지는 그날 밤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신기한 경험을 했다. 7년 전 죽은 동업자의 혼령이 찾아온 것이다. 그의 영혼엔 죽을 때까지 모았던 금전.은닢과 같은 무게의 쇠붙이.쇠사슬이 달라붙어 움직일 때마다 철거덕거리는 소리를 냈다. 동업자는 생전에 베풀지 못했던 삶을 후회했다. 그 떠돌이 영혼은 "지난 7년간 휴식도, 평안도 없이 양심의 가책에 시달렸다"고 고통을 털어놨다.

이어서 과거.현재.미래의 유령도 찾아왔다. 스크루지는 과거의 유령의 도움으로 청년기까지 꿈과 환상, 사랑과 우정으로도 행복을 느낄 줄 알았던 존재임을 자각했다. 현재의 유령은 사람들이 스크루지를 얼마나 조롱하고 있는지를, 미래의 유령은 그의 주검 앞에서 가까운 사람들이 낄낄거리며 재산을 나눠갖는 광경을 보여줬다. 그는 베풂의 가치를 살아서 깨달은 것이 고마워 격렬히 흐느꼈다. 스크루지는 크리스마스 아침에 새로운 세상을 맞았다. "난 지금 깃털처럼 가볍고, 천사처럼 행복하고, 꼬마처럼 즐거워. 술취한 것같이 어질어질해. 메리 크리스마스!" 스크루지는 동네에서 제일 크고 비싼 칠면조를 사서 가련한 종업원의 집에 몰래 보냈다. 생애 처음 해본 크리스마스 선물이다(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에서). 예수님은 이번 크리스마스 때도 우리들 마음 속의 스크루지를 찾아 오실 것이다.

전영기 정치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