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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우리 꿈을 몰수하면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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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 나라의 정치라는 게, 그래도 여기가 제 나라니 별 수 없이 살고 있는 우리의 삶을 이다지도 한심스럽고 진절머리나게 해도 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요즈음, 나로서는 드물게 신선한 뉴스를 보았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스피처 우주망원경이 촬영한 우주 사진들이 그것이다.

소용돌이치는 나선 은하, 반짝이는 입자들을 발산하며 탄생하는 별의 모습, 푸른 가스 불길 같은 성운 속에 있는 태어난 지 얼마 안되는 원시성의 모습들은 보는 사람을 즉시 감동의 소용돌이, 도취의 성운 속에 있게 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모습들은 너무 역동적이어서 사람의 마음을 당장 가동시키면서 똑같이 역동적인 소용돌이 속에 있게 하기 때문이다.

1993년 7월 18일자 LA 타임스는 은하수 너머 멀리멀리 여기에서 1천2백만 광년 떨어진 데서 폭발 중인 초신성(超新星)에 관한 기사를 실으면서, 그 별이 폭발하면서 방출하는 에너지가 모든 별들과 은하군(群)의 에너지 방출량의 반에 해당한다는 보도를 한 적이 있다. 그리고 그 초신성은 다른 별들을 만드는 물질을 분출할 뿐만 아니라 생명 바로 그것의 구성요소를 방출한다고 했다. 특히 우리 뼛속의 칼슘과 핏속의 철분은 태양이 생겨나기 전에 우리 은하계에서 폭발한 이 별들 속에 들어 있었던 것이라는 풀이였다.

우주과학이 목표로 하는 게 무엇인지, 가령 우주와 생명의 신비를 밝혀보려는 과학적인 의도 외에도 예컨대 무슨 군사적 목적 같은 것도 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나 같은 글쟁이가 별에 대해 얘기할 때는 우리가 사는 이 인간세상을 염두에 두고 얘기를 꺼낸 것이다. 가령 우리 몸을 구성하는 물질들이 원래 별에서 온 것이라는 걸 안 순간 나 같은 사람한테는 인간이 반짝이기 시작하고 별로 보이지 않았던가. 또 한편, 우리가 원래 별인데, 그래서 빛나는 존재들이었는데 정치니 국가니 사업이니 종교니 그런 것들을 하면서 많이 망가지고 나빠져 대부분 발광(發光)이 아니라 발광(發狂)을 하는 존재가 되지 않았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별이 태어나는 광경을 보면서 스스로도 새로 태어나는 것처럼 느끼는 상상적 동화력이 우리의 희망이 될는지도 모른다. 모든 역동적 이미지들이 실질적인 에너지원(源)이라는 사실은 가령 시를 쓰고 읽으면서 줄곧 느끼는 것이다. 우리 몸을 구성하는 물질들이 별에서 왔기 때문에 사람이 반짝인다고 하는 것을 시적 상상력이라고 한다면, 그러한 상상력은 가령 사랑이나 희망 같은 추상적인 단어들과 달리 마음을 실제로 그러한 상태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상상 활동을 그냥 꿈꾸기라고 한다면 오늘날 우리는 꿈꾸는 능력이 현저하게 줄어들지 않았나 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대중예술이라는 영화도 그렇고 젊은 세대의 음악도 그런 것 같다. 버스에서 젊은 세대의 노래를 들으면서 늘 느끼는 건 그 음색이 (단조롭고 시끄러운 건 물론) 꼭 떼쓰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한 시대의 음악이 그 시대의 기풍을 제일 여과없이 (직접적으로)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 떼쓰는 것 같은 음조는 오늘 이 나라의 정신.정서의 위생상태를 가늠할 수 있는 한 증후가 아닐지…. 하기는 정부든 학교든 회사든 그 공동체의 운명에 책임이 있는 자리에 있는 공인(公人)인 어른들도 너무 생각 없고 유아적이어서 떼쓰는 것과 다름없는 행태들을 전혀 달라지는 기색없이(!) 계속 보여주고 있으니 아이들의 음악이 어떻다고 말해서 무엇하랴.

혁명을 뜻하는 영어 'revolution'에는 '주기적 회귀'라는 뜻도 들어 있다. 특히 그것은 지구를 비롯한 모든 별의 조화로운 운행을 가리키기도 하는 바, 우리의 정신-허약하기도 해서 깜박깜박 가기도 하는, 우리의 정신이 끊임없이 제 정신으로 돌아가는 것, 옳은 자리로 회귀하는 게 레볼루션이다. 그리고 꿈을 몰수하는 시대일수록 막무가내로 꿈을 꾸는 것, 꿈꾸는 상태로 회귀하는 것도 레볼루션이다. 그러나 온전치 않은 자기 자신이나 자기 편으로 회귀하는 건 레볼루션이 아니다.

정현종 시인.연세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