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수교 후유증/대만 외교노선 진퇴양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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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하나의 중국」정책 포기여론 거세/독립선언땐 본토와 충돌 가능성
한국과 중국 수교를 계기로 한국과 단교를 선언한 대만이 외교정책 실패를 질책하는 국내 여론의 거센 비난에 직면,내우외환의 위기를 맞고있다.
야당을 비롯,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국내 세력들은 정부의 외교정책 실패에 대한 비판을 계속하고 있을뿐 아니라,일부 과격세력들은 그동안 대만이 취해온 외교노선의 근본적 전환을 요구하는 항의시위까지 벌이고 있다.
특히 지금까지 대만 독립에 유보적 태도를 보여왔던 본토 출신들이 지난달 23일 독립을 위한 단체를 구성하는 등 대만과 중국의 이중승인을 목표로 한 대만정부의 「탄력외교」정책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움직임이 표면화 되고 있다.
대만 독립을 주장하는 세력들은 『이유야 어찌됐든 아시아 유일의 외교관계국인 한국을 잃은 사실은 뼈아픈 외교적 패배임이 분명한만큼 탄력 외교정책은 이제 포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또 중화민국이라는 국명으로는 더 이상 국제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므로 「하나의 중국」이라는 기존 국시를 과감히 포기하고,「하나의 중국·하나의 대만」이라는 이른바 「1중 1대」정책으로 전환하는 외교·통일정책의 근본적 전환을 촉구하고 있다.
한중수교는 대만사회에 잠복해 있던 독립요구를 촉발시키는 도화선이 됐으며,특히 대한 단교에 따른 후유증은 대만의 외교노선을 심판대에 올려놓음으로써 대만정부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대만은 지난 71년 10월 중국의 유엔가입으로 유엔에서 축출된 이후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지난해 4월 리덩후이(이등휘)총통이 중국공산당을 정치적 실체로 인정한 것을 계기로 「탄력외교」정책을 본격 추진해왔다.
『중화민국이냐 중화인민공화국이냐의 선택은 이제 과거지사』(91년 7월 대만 당국이 미국 뉴욕타임스지에 게재한 광고)이므로 중국과 국교를 맺고 있는 국가라 하더라도 외교관계를 맺는다는 이중 승인정책이 바로 탄력외교의 핵심이다.
대만은 이에 따라 89년 7월 카리브해의 그레나다와 국교를 수립한 것을 필두로 지난해 7월 중앙아프리카와의 국교회복,올해 7월에는 아프리카 니제르와 국교를 맺었으며,최근엔 필리핀을 적극 공략,긍정적인 반응을 얻어내는 등 활기찬 외교활동을 벌여왔다.
이와 함께 88년 동유럽 각국에 대한 직접무역금지 조치를 해제한데 이어,90년 소련·알바니아,지난해 10월엔 북한에 대해 직접무역을 허용함으로써 이제 무역금지국은 공식적으로 중국·쿠바 2개국만 남겨놓은 상태다. 지난해 9월엔 베트남과도 무역사무소 상호설치에 합의했다.
대만정부가 이처럼 국제관계 회복에 진력하는 것은 국민총생산(GNP) 1천8백1억달러,1인당 국민소득 8천8백15달러(91년도)에 달하는 등 막강한 경제력을 갖추고 있을뿐 아니라 87년 계엄령 해제,올해말 입법권(국회의원) 직접선거 등 정치적으로 급속한 민주화를 성취해 냄으로써 이제 국제사회에서 대만의 위상제고가 긴급과제로 부각됐기 때문이다.
한편 대만의 탄력외교정책을 경계해왔던 중국은 탄력외교가 「은탄외교」(돈으로 외교관계를 사는 것)라고 비난하는 등 불편한 심기를 노골적으로 표현하면서 대만에 본때를 보여줄 기회를 노려왔던게 사실이다.
중국은 이번 한국과의 수교를 대대만 외교전에서 비장의 카드로 사용한 측면이 없지 않다는 분석이며,대만정부가 한중수교에 엄청난 충격과 함께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그러나 대만이 택할 수 있는 외교노선은 중국이라는 거대한 실체가 엄연히 존재하는 한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우선 제1야당인 민주진보당을 비롯한 국내 일부세력들이 주장하는 대만독립은 그동안 국민당 정권이 49년 본토에서 대만으로 내려온 이후 고수해온 「하나의 중국」정책과 정면배치 될뿐 아니라,자칫하면 중국의 무력사용을 유발시키는 위험부담이 따르기 때문이다.
중국은 지난 90년 12월 ▲대만이 독립을 선언하거나 ▲외침을 받을 경우 ▲대만과의 통일문제가 장기화할 경우에는 무력을 사용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바 있다. 그렇다고 중국과의 외교적 경쟁을 포기할 경우 홍콩처럼 중국의 한 「지방정권」으로 전락할 수 밖에 없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따라서 대만정부는 한중수교의 여파를 최소화 하면서 현재의 외교노선을 견지할 수 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이 현재로선 지배적이다.<문일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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