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에이스 혹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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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국내 프로야구에 투수난이 가중되고 있다.
프로야구는 올 들어 간판투수인 선동열(선동렬·해태)이 7년간의 힘든 여정 끝에 몸에 무리가 발생, 하향길로 접어든데다 8개구단의 주축투수들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극심한 타고투저(타고투저)의 현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프로2∼3년생인 김태형(김태형·롯데) 김원형(김원형·쌍방울)등 신예투수들 마저 거듭된 등판으로 허우적거리고 있어 전반적인 투수진의 침체를 부채질하고 있다.
올해 8개구단 투수들은 지난달 1일 현재 총4백64게임에 등판해 방어율4·32를 기록, 최악의 성적을 남기고 있다.
단지 타고투저의 현상으로 평가할 수도 있으나 너무 수치가 높다.
사실 방어율이 4를 넘어서는 투수는 프로야구투수로는 부적당하다는 게 선진 미국· 일본등에서의 통념이다.
따라서 한국프로야구는 세미프로야구라는 혹평마저 받고 있다.
이 같은 원인은 어디에서 오는가?
전문가들은 투수층에 비해 경기수가 많은 것을 첫 번째 원인으로 꼽고 있다.
프로다운 기량을 갖춘 투수는 적은데 해마다 경기수가 늘어나 수준미달의 투수들까지 대거 등장, 전반적인 투수진의 성적이 떨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전문가들은 팀당 1백26게임을 치르도록 돼 있는 현행제도를 팀당 1백4게임정도로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두 번째로 감독들의 지나친 승부욕 때문에 에이스 투수들이 혹사당하면서 이들의 수명이급격히 단축, 투수전반의 침체를 야기 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올해 8개 구단은 파행적인 단일리그방식 속에서 준플레이오프에 진출하는 4위안에 들기 위해 각 구단이 무리한 투수로테이션을 감행해 왔다.
이들 중 가장 정도가 심한 구단은 롯데.
롯데는 올해도 역시 기둥투수인 윤학길(윤학길)이 2백6이닝(29게임)이나 던지는 무리를 계속했고 신인 유망주인 염종석(염종석)이 1백99이닝에 등판, 고군분투하면서 팀을 3위로 끌어 올려놓고 있다.
KBO가 정한 투수의 규정등판이닝이 1백26이닝인 것을 감안하면 이들의 등판은 무리로 볼 수밖에 없다.
이들에 비해 롯데의 남은 13명 투수가운데 10명이 50이닝미만의 등판을 한 것은 대조적이다.
롯데는 승리를 위해 지나치게 일부투수에만 의존하고 있거나 투수들의 훈련을 제대로 안시켜 기용하지 못하거나 둘 중에 하나라고 볼 수밖에 없다.
일부투수만을 집중 투입하는 경우는 정도에 차이가 있으나 8개 구단의 공통적인 현상이다.
1위 빙그레는 15명의 투수가운데 장정순(장정정·1백76이닝) 한용덕(한용덕·1백78이닝) 송진우(송진우·1백65이닝)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고 7명의 투수들은 50이닝 미만을 등판했다.
시즌 중 선동열의 부상으로 비상이 걸렸던 해태는 이강철(이강철·1백84이닝)이 다소 무거운 짐을 짊어졌으나 워낙 투수층이 탄탄해 김정수(김정수·1백54이닝) 신동수(신동수·1백30이닝) 조계현(조계현·1백38이닝) 송유석(송유석·1백11이닝)등이 고르게 역할을 분담하고 있다.
한 때 「에이스투수를 혹사시키는 감독」이란 불명예를 뒤집어 쓴 삼성의 김성근(김성근) 감독은 투수들이 전반적으로 저조한 탓인지 비교적 고른 등판을 시키고 있어 이채롭다.
삼성은 이태일(이태일·1백52이닝) 김상엽(김상엽·1백42이닝)이 위험수위에 도달했을 뿐 김인철(김인철·1백13이닝) 성준(성준·1백9이닝) 오봉옥(오봉옥·1백4이닝) 유명선(유명선·78이닝)등이 체력에 지장을 받지 않는 여유있는 등판을 즐겼다.
시즌 개막전 투수왕국(?)으로 불리던 태평양은 억대투수 정민태(정민태)의 부상에 이어 최창호(최창호) 정명원(정명원) 등이 쓰러지자 박은진(박은진·1백59이닝) 박정현(박정현·1백43이닝) 양상문(양상문·1백27이닝)이 트로이카를 형성, 마운드를 떠맡았다.
LG·쌍방울·OB도 주축인 2∼3명의 투수만이 고군분투 했을 뿐 남은 투수들은 연봉만 축내며 눈치 밥을 먹고있다.
전문가들은 8개구단 감독들의 이 같은 에이스 집중투입현상이 계속된다면 2∼3년안에 프로야구투수 수준은 더욱 떨어질 것으로 우려, 구단 차원의 시급한 대책을 요망하고 있다.
투수들의 혹사를 막기 위해서는 구단별로 투수당 최소, 최다등판 이닝을 정하는 문제를 전문가들은 권하고 있다.

<권오중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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