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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백 호소, 주인 보호 위해 죽음 선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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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일본 마쓰오카 도시카쓰 농림수산상이 28일 의원 숙소에서 자살한 뒤 출동한 경찰이 취재진들을 제지하고 있다.[도쿄 AFP=연합뉴스]

1998년 2월 19일 재일동포 출신으로 일본 중의원 4선 의원이었던 아라이 쇼케이(新井將敬)가 도쿄의 한 호텔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불법 증권거래 혐의로 체포될 위기에 처하자 "최후의 말은 들어 주십시오. 저는 결백합니다"라는 유서를 남기고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일본에서는 정치인.기업인 등이 자신의 결백을 호소하기 위해 자살한 사례가 적지 않다.

28일 자살한 마쓰오카 도시카쓰 농림수산상은 전후 일본에서 자살한 첫 현직 각료지만, 임기 중에 스스로 생을 마감한 국회의원은 7명이나 된다. 지난해 8월에는 자민당 의원 나가오카 요지(永岡 洋治)가 자택에서 자살했다. 76년 록히드 뇌물 사건 때는 다나카 가쿠에이(田中角榮) 총리의 비서 겸 운전사가 검찰 수사 중 자살했다. '주인의 비밀'을 지켜 주기 위해서라는 세간의 평가가 적지 않았다.

이 밖에도 일본에서는 파산 등 위기에 처한 기업 경영자가 자살로 삶을 마감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이에 대해 일본 사회가 전통적으로 조직이나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자살을 선택하는 경우를 높이 평가하는 문화에서 그 이유를 찾는 전문가도 많다. 자살한 뒤에는 책임을 묻지 않는 문화도 배경의 하나로 친다.

정치적인 이유로 인한 자살 외에도 일본은 전통적인 '자살 대국'이기도 하다. 인구 10만 명당 자살이 연간 20건을 넘어 주요 서방 선진 7개국(G7) 중에 압도적으로 높은 자리를 오래 유지해 왔다. 98년부터는 연간 자살자 수가 계속 3만 명을 넘고 있다. 자살의 배경도 경제적인 어려움이나 신병 등 전통적인 이유 외에 지난해에는 왕따(이지메)를 이유로 목숨을 끊은 학생이 줄을 잇는 등 다양한 편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시오자키 야스히사(鹽崎恭久) 관방장관을 중심으로 자살 종합대책회의를 만들어 바로 지난주인 22일 '자살 종합대책 대강령' 초안을 결정한 바 있다. 2016년까지 자살 건수를 현재보다 20% 줄이겠다는 계획이 나오자마자 정부 고위 관료가 충격적인 자살을 한 셈이다.

이승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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