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의 여왕' 뒤엔 이창동 조련술 빛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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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도연이 28일 오전(한국시간) 칸영화제 시상식이 끝난 뒤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사진기자들 앞에서 여우주연상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칸 AFP=연합뉴스]

이창동 감독의 힘.

전도연의 칸 여우주연상 수상은 이창동 감독의 혹독한 배우 조련술의 성과이기도 하다. 전도연은 수상 소감으로 "저 혼자서 수상은 불가능했고 감독님이 있어 가능했다. 송강호씨는 내가 맡은 인물을 완전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은 작가 출신답게 탄탄한 시나리오는 물론 연기 지도력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작가주의 예술영화지만 작품마다 배우들의 열연이 화제가 됐다. '밀양'까지 네 편 모두에서 주인공을 거물 배우로 키우거나 재발견했다. 감독 데뷔작인 '초록물고기'의 한석규, '박하사탕'의 설경구, '오아시스'의 문소리가 그들이다.

TV 탤런트 출신의 한석규는 '초록물고기'에서의 성격 연기로, 기존의 지적인 이미지를 깨며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설경구와 문소리는 이 감독이 연극무대에서 스카우트해 데뷔시킨 경우다. '박하사탕'에서 절규하는 연기로 주목받은 설경구는 데뷔와 함께 충무로 실력파로 자리매김했다. '박하사탕'으로 데뷔한 문소리는 장애 여성을 연기한 '오아시스'로 2002년 베니스영화제에서 신인배우상을 받았다. '밀양' 역시 국내 시사회 직후부터 '전도연의 재발견'이라는 평이 나왔다. '밀양'과 '오아시스'로 이 감독은 세계 3대 영화제에서 연기상을 두 번 건져올리는 기록을 세웠다.

이 감독은 구체적인 연기 지시를 내리지 않고 배우 스스로 자신의 역할을 소화하게 하는 스타일로 유명하다. 리얼리스트 감독답게 연기에서도 최대한 사실적 연기를 주문한다. 배우가 스스로 답을 찾을 때까지 극단으로 내몰고, 마음에 들 때까지 '찍고 또 찍어' 배우들 사이에서는 '변태'라는 악명도 얻었다. 그러나 이런 악전고투 끝에 배우들이 한계를 깨고 성장한다는 점에서, 연기파 배우들은 '함께 일하고 싶은 감독'으로 그를 꼽는다.

‘밀양’의 이창동 감독과 전도연.송강호(오른쪽부터)가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칸 로이터=연합뉴스]

"오래전부터 꼭 한번 일해 보고 싶었다"는 전도연 역시 "막상 구체적인 연기 주문 없이 '이것도, 저것도 맞다''알아서 하라'며 모호한 입장을 취하자 감독님이 원망스러워 따지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힘들었지만 촬영을 마치고 나니 결국 배우 스스로 답을 찾게 하신 것을 깨달았다"는 그는 "주연 배우부터 막내 스태프에 이르기까지 팀 전체에 책임감과 주인의식을 갖게 하는 것이 이창동 감독의 스타일"이라고 말했다.

양성희 기자

◆ '밀양'=극한에 내몰린 여자를 통해 삶과 존재, 신과 구원의 문제를 묻는 영화. 문화관광부 장관으로 현장을 떠났던 이창동 감독이 '오아시스' 이후 5년 만에 선보였다. 이청준의 단편소설 '벌레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국내에서는 23일 개봉, 28일 현재 40만 명의 관객을 모았다. 죽은 남편의 고향인 밀양으로 내려온 신애(전도연)는 하나뿐인 아들을 유괴로 잃고 절망에 빠진다. 신에 귀의해 희망을 찾은 그는 유괴범을 용서하려 감옥으로 찾아가지만, 이미 신을 영접했다는 유괴범을 보고 절망한다. 카센터 사장인 노총각 종찬(송강호)만이 그런 신애 곁을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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