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미국민 자유 보장하는 기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이 25일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에서 열린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 연설하고 있다. [아나폴리스 로이터=연합뉴스]

"언론은 우리의 적이 아니다."

로버트 게이츠 미국 국방장관이 25일 정부 정책에 제동을 걸고 비판하는 의회와 언론을 적대시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메릴랜드주 아나폴리스에서 이날 열린 해군사관학교 졸업식에서다. 게이츠 장관은 축사에서 "(의회와 언론사가) 때로는 우리의 인내를 시험하지만, 이들은 미국민의 자유를 가장 확실하게 보장하는 기관"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헌법 수호 의무를 언급하며, "의회와 언론은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의 양대 축"이라고 못 박았다. 미국 헌법은 제1조에서 연방의회의 입법 권한을 명기하고 있으며, 수정헌법 제1조는 언론과 보도.집회의 자유 등을 명시하고 있다.

그는 졸업하는 1028명의 생도에게 "여러분은 의회에 보고할 때, 특히 그 내용이 우리의 문제점을 인정하는 것이라면 더욱 정직하고 솔직해야 한다"며 "이는 언론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그는 언론기관에 대해서는 "그들은 적이 아니다. 언론을 적으로 대하는 것은 자멸을 초래할 뿐이다. 진정한 군 간부라면 보도 내용을 확인하고,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를 인정하고 개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12월 국방장관에 오른 게이츠는 언론과 자주 대립했던 전임자 로널드 럼즈펠드와는 정반대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3월 이라크전에서 부상한 장병이 월터 리드 육군병원에서 열악한 환경에서 날림 치료를 받고 있다는 언론보도가 나오자 진상조사를 거쳐 바로 육군장관과 육군의무감.병원장을 경질했다. 게이츠 장관은 언론보도 후 병원을 직접 둘러본 뒤 "용납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즉각적인 조사와 책임자 문책을 지시했다. 언론들은 이런 게이츠의 태도에 대해 "럼즈펠드처럼 방어 본능에 매달리는 대신 단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긍정적인 반응이다.

뉴욕 타임스는 "게이츠가 취임 직후 국방부 내에서 언론보도 시정 등의 업무를 맡은 특별홍보팀이 해체됐다. 그는 국방부 내 럼즈펠드의 잔재를 몰아내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고 평가했다.

박소영 기자

◆ 로버트 게이츠=아버지 부시 대통령 시절인 1991~93년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낸 정보통이다. 이미 대학 시절 CIA에 채용돼 27년간 몸담았다. 9년간 국가안전보장회의(NSC)에서 네 명의 대통령을 보좌하기도 했다. 87년 한 차례 CIA 국장에 첫 지명됐다가 이란-콘트라 사건에 연루된 전적 때문에 철회되는 시련을 겪었다. 93년 CIA를 떠난 뒤에는 여러 기업에서 임원으로 활동했고, 2002년부터 텍사스의 A&M대 총장을 지냈다. CIA 국장 시절 강경파로 인식됐던 그는 지난해 장관 인준청문회에서 대화와 타협을 중시하는 실용주의적인 태도로 민주당 의원들의 지지를 얻어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