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국어학자 이숭령 박사|몸은 늙었지만 연구열은"청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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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가을인가 보다. 해지면 선선한 바람이 정원수 사이로 몸에 와 닿는다. 올 여름은 유난히 견디기 힘들었다. 나무 사이로 놓인 의자 사이를 옮기는데도 숨이 차다. 책들로 꽉 찬 2층 서가에는 아직 내가 써서 채워야 될 공간이 많은데…. 원고지를 잡아 보지만 몇 장 나갈 수가 없다. 오늘 낮에는 아들의 도움으로 시내 드라이브를 했다. 눈에 들어오는 모습들이 다시 정겹기만 하다. 쓰러지는 그 날까지 책상 앞에 앉아 있자 고 했지만 내가 이렇게 나마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덕이다. 아내와 함께 올라서 웃음 짓던 많은 산들이 이제 빨갛게 물들겠지. 친구들도 이제 다 갔다.』우리 국어학계의 큰 별 심악 이숭령 박사(84). 그의 부인 이종희 여사(71)가 전해주는 이박사의 요즈음 심정이다.
언제나 또렷한 눈빛으로 건강함을 보여주던 이박사가 투병 중이어서 부인이 대신 전해준 것이다.
전국의 온 산을 누비며 언제까지나 건강할 것 같던 이박사도 끝내 나이는 이기지 못했다.
이 박사는 백제문화연구원장으로 있던 지난 89년2월 갑자기 호흡장애를 일으켜 아들 의돈씨가 과장으로 있는 원자력병원으로 옮겨져 정밀검사를 받았다.
결과는 뇌관경색 증.
뇌에 있는 혈관에 노폐물이끼여 호흡장애를 일으키는 병이다.
팔십이 넘도록 젊은이 못지 않게 학구열을 과시하면서 감기조차 한번 앓아 본적이 없는 이 박사로서는 생애 처음 맞이하는 병이었다.
그러나 젊을 때 다스린 건강은 곧 보상을 지불했다. 1년여의 병원생활중 의사가 놀랄 만큼 회복이 빨라 지난해 봄에는 퇴원해 집에서 요양할 수 있게 됐다.
입원동안 이 박사는 자신이 좋아하는 승마·수영모습을 삽화로 그려 간호원들을 즐겁게 하는 여유도 보여줬다.
이박사의 모습은 병을 얻기 전까지만 해도 관악산·도봉산 등에서 일요일마다 마주할 수였었다. 부인과 함께 하는 산행은 해방 후부터 시작됐으니40여 년이나 됐다. 산 정상에서는 자신을 알아보는 후배들을 모아 놓고 종종 산상강의가 펼쳐졌다.
『건강은 등산으로 다스려야해. 나이가 들어 다리에 힘이 빠지는 중년 이후에는 특히 등산이 좋아.』
젊어서 이 박사는 못하는 운동이 없었다.
검도·승마·스케이트·수영 등도 좋아했지만 특히 산을 사랑해 한국산악회·산악연맹의 회장을 지내기도 했다.
건강에 대한 남다른 관심이 늙어 찾아온 병을 이기게 한 것이다.
『요즘은 정원 산책은 불론 문을 열고 동네를 둘러보기도 합니다. 기도에 호흡을 도와주는 기구를 부착하고 있어 발성이 안되기 때문에 식구들이 입술을 보고 읽거나 필 담으로 대화를 하지요.
식사는 아무것이나 잘 하시고 아침 7,8시면 일어나 집안활동을 시작합니다』라고 부인 이 여사는 전한다.
2층에 꾸민 서재에서 진단학보나 국어연구원이 보내준 간행물을 훑어 보기도하는 이 박사는 눈이 어두워져 제목만 읽은 신문을 놓고 세상걱정을 하기도 한다.
부인 이 여사를 가장 안타깝게 하는 것은 몸을 걱정해 일찍 잠자리에 들라고 채근하면『공부도 못하고 지내느냐』고 되레 야단을 칠 때다.
이박사의 학문에 대한 정열은 아직도 식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금도 책상 앞에 앉으면 표정이 마냥 행복해진다.
이 박사는 국어학에 대한 책만20여권을 썼으며 논문은 1백30여 편을 헤아리고 있다.
병을 얻기 전까지만 해도 이박사의 서재는 새벽까지 쓰다버린 원고지, 거푸 마신 찻잔으로 어질러지는 것이 다반사였다.
남다른 이박사의 집념은 지난78년, 그러니까 70세 때 한 신문에 기고한 자신의 수필에도 잘 나타나 있다.
『나는 지금 5년간 걸릴 연구집필을 하고 있다. 책으로 네 권 또는 다섯 권, 원고지로 1만3천여 장에서 1만5천장의 연구물 집필을 꿈꾸고 있다. 이미 학술논문이 1백 편을 넘어섰으니 이것만도 인문사회 계에선 드문 기록일 듯도 하다. 그러나 이제 진행중인 작업을 과연 5년 간에 끝낼 수 있을까. 그때까지 내 건강이 까딱없을까. 자칫하면 팔십까지 걸릴 작업이 될 위험도 없지 않다. 여기서 나는 적지 않은 초조감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만년청춘이 아니니 그만 자라고 닦달하는 아내를 돌려보내고 나는 잠시 머리를 식힌다.』
부인 이 여사는『2년 전부터 언어학에 대한 책을 쓰시겠다며 원고지를 메워가고 있는데 진척이 없다』며『퇴원 후부터 시작한 일대기는 90장정도 밖에는 완성이 안됐다』고 말했다.
85년부터 옮겨와 살고있는 서울제기동 단독주택에 부인 이 여사와 둘이 살면서 정원수 아래곳곳에 놓인 의자와 2층에 꾸며진 서가 사이를 오가며 이 박사는 못 다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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