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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은 끝나가는데 할 일은 많고…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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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호 26면

오병상 Chief Editor obsang@joongang.co.kr

일모도원(日暮途遠)이란 말이 떠오르는 요즘입니다.

‘날은 저무는데, 갈 길은 멀고…’란 의미로 ‘사기(史記)’에 나오는 말이죠. 달관한 나그네의 게송(偈頌)같은 운치가 느껴지는 표현이지만 사실은 살벌한 정치적 수사(修辭)입니다.

초(楚) 나라 사람 오자서(伍子胥)가 아버지와 형을 죽인 평왕(平王)에게 원수를 갚기 위해 오(吳) 나라 군사를 지휘해 초 나라를 정복했습니다. 오자서는 평왕의 시신을 꺼내 채찍질을 했습니다. 당시 ‘도리에 맞지 않는 행위’라는 친구의 비판에 오자서가 반박한 글이 ‘일모도원’입니다.

임기 말 참여정부 사람들의 심정이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임기는 끝나 가는데 할 일은 많고…. 이런 강박관념에 쫓기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무리한 일을 밀어붙이는 것이 아닐까. 최근 기자실 폐쇄(6면 참조)가 대표적인 무리수라고 생각됩니다.

어차피 권력과 언론은 갈등 관계일 수밖에 없습니다. 미국 헌법을 기초한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이 남긴 모순된 일화가 잘 말해줍니다.

대통령이 되기 이전 제퍼슨은 “신문 없는 정부냐, 정부 없는 신문이냐. 어느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나는 한순간의 망설임도 없이 후자를 택하겠다”는 유명한 말로 언론자유의 전도사가 됐습니다. 그러나 대통령이 된 뒤 제퍼슨은 한 편지에서 “신문에 난 것은 어느 하나 믿을 수 없다. 비록 사실이라도 신문에 인쇄되는 순간 오염돼 의심스러워지게 된다”고 쓸 정도로 언론을 혐오했습니다.

조금 다른 경우이긴 합니다만, 공기업 감사들이 혁신 세미나를 위해 남미 이과수 폭포로 가는 어처구니없는 사건에서도 일모도원의 초조감이 읽혀집니다. 시간에 쫓기는 일부 참여정부 주변인이 끝물에 조금이라도 더 누려 보자는 사심에서 도리에 맞지 않는 일을 꾸민 것으로 보입니다.

권력은 유한할 뿐 아니라 시간이 지나면서 닳아 줄어들기 마련입니다. 세월에 따른 ‘권력 마모(Attrition of Power)’는 불가항력적입니다. 정권을 잡은 권력자들은 세상을 모두 바꿀 듯한 기세로 출발합니다. 실제로는 많은 것은 바꾸지 못합니다. 그러곤 대부분 ‘역사적 위업을 이뤘다’고 자위하면서 물러납니다.

과연 참여정부가 얼마나 이루었는지에 대한 정확한 평가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할 것입니다. 현 시점에서 바란다면 참여정부 사람들이 권력 마모 현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 일모도원의 초조함에 무리수를 더하는 일이 없었으면 합니다.

대통령의 퇴임 이후가 궁금해 봉하마을(1,2면 참조)을 먼저 찾아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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