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소보법 개정안 의료·금융 등「성역」그대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0면

정부가24일 발표한 소비자보호법 개정안의 내용에 대해 관련 단체 등의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87년에 이은 이번 개정손질에는 그동안 선언적 의미에 그쳐온 소비자보호법을 실효성있는 법으로 만들기 위한 조치들이 강구되고 소비자문제전문가들의 의견이 상당 폭 반영돼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우리나라 소비자 보호정책의 기본법으로 지난80년 제정된 소비자보호법은 막연하게 소비자권익을 보호해야한다고만 했지 이를 실제 실행하기 위해 필요한 근거기준이나 조치 등은 빠뜨리고있어 그동안 이를 근거로 나온 행정조치나 판례가 하나도 없을 정도로 사 문화 지경에 있었다. 때문에 개정·보완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돼왔었다.
이런 점에서 이번 개정방향은「형식」에「내용」을 부여하는 일보 진전된 것이라는 평가다.
소비자권익을 실질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조치로 이번에 관련행정규제의 구체적 기준이 서고 시정명령 등 조치내용이 강화된 것은 우선 꼽을만하다.
광고·안전·표시등에서 사업자들이 소비자보호를 위해 지켜야할 사항들이 명시되고 중앙행정기관장이나 도지사가 이와 관련해 기준준수 및 행위정지 등의 명령을 내릴 수 있게 했으며 문제 있는 사업자를 공표 할 수 있게도 했다.
또 기준을 어긴 사업자에 대해 현행 1년 이하(또는 1천만원이하 벌금)인 징역처벌도 3년 이하(3천만원이하)로 강화됐다.
소비자보호원이 제한적이나마 문제사업자에 대해 자료제출을 요구할 수 있게 한 것도 소비자보호 측면에서 한 걸음 나아간 것으로 평가된다.
일반조사권이 아니라 국가 등의 위탁을 받은 소비자사안에 대해 필요한 경우라는 단서가 붙긴 했지만 그동안「백화점사기세일파동」,「의약품 메틸알콜 검출파동」등 소비자권익과 직결된 중대사안이 있을 때조차 소비자의 시각에서 문제를 보고 조사할 기관이 없고 소비자보호원이나 단체 등도 유구무언으로 있어야했던 현실에 비춰볼 때 더 일찍 됐어야할 조치라는 지적이다.
87년 1차 개정 때 느닷없이 소비자단체 등의 공표 권을 제한,『개선이 아닌 개악』이라는 단체들의 비난을 받아온 조항들도 이번에 완화되는 쪽으로 손질됐다. 전문시험 등의 경우 여전히 특정검사기관의 검사절차들을 거친 것만 발표토록 하고 있으나 여러 단서를 달았던 현행법에 비해서는 소비자단체들의 활동이 보다 자유로워 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그러나 당초 마련됐던 개정 원안에 비해서는 일부 삭제된 부분 등 후퇴했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예컨대 의료·금융 등 현재 소비자분쟁조정위원회 등에서 다룰 수 없는 성역(?)들을 대폭 없앤다는 방침이 백지화됐다. 기업들의 소비자상담실이 실질적 역할을 하도록 일정 자격자를 배치케 한다는 것도 기업들의 반발로 유야 무야 돼 앞으로의 과제로 남게됐다.
소비자전문가들은 이와 관련해 정부의 소비자정책의지를 계속 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사실 기존 법이 전혀 실효성이 없었던 데는 법규정자체에 원인이 있다기보다는 관련기준 등을 고시, 적용하게 돼있는 정부부처들이 하나같이 이를 뒷전에 미루고 10년이 넘게 아무런 소비자관련조치들을 안한 때문이라는 시각이다. 따라서 문제는 법개정 이전에 그동안 생산자 중심으로 치우쳐 온 정부와 업계가 어떻게 생각을 바꾸고 실천하느냐에 달려있다는 것이다.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의 김재옥 사무처장은『이제 기업들도 규제가 아닌 경쟁력강화라는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소비자보호에 나설 때가 됐다』고 강조하고 기업들의 이 같은 태도변화여부에 따라 소비자단체 등의 활동도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