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꿈나무] 기억의 호수에서 찾아보세요, 잃어버린 추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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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기억을 가져온 아이
김려령 지음, 정문주 그림
문학과 지성사, 175쪽
8,500원, 초등 고학년

기억에 빗대 소외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작가의 솜씨가 돋보이는 동화다.

구구단을 외다 8단에서 막힌 기억, 용돈을 숨겨 놓고 찾지 못한 기억, 생각하면 마음이 아파 꽁꽁 숨긴 기억…. 이러한 기억들이 살고 있는 마을이 있다. '기억의 호수'다. '펑'하고 터지면서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이 기억들의 소원. 주인이 불러주지 않으면 플라스틱처럼 딱딱해진 뒤 부서져 버린다. 잊혀진 것은 기억만이 아니다. 사람도 잊히면 마을로 들어온다. 그곳에 가면 잃어버린 기억, 잊어버린 사람들을 되찾을 수 있을까?

여름 방학을 맞은 차근이는 이혼한 아빠가 살고 있는 시골 할아버지 집으로 간다. 발명가인 할아버지는 4년 전 실종됐다. 아빠가 사용하고 있는 실험실은 엉뚱한 발명품들이 가득하다. 실험실에서 놀던 차근이는 무당 딸인 다래와 함께 '기억의 호수'로 통하는 문을 열게 된다. 둘은 '플라스틱 기억'을 만나 '떠나온 이들의 마을'에 대해 듣게 된다. 잊혀진 사람들이 사는 마을의 주민들은 신기하게도 모두 혼자 살고 있다.

"왜 외롭다면서 혼자 사는 걸까?" 궁금해 하던 차근이는 감초 할머니와 도승이를 만나 그 이유를 안다. 또 한 번 상처 입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부모에게 버림받아 혼자 살고 있는 도승이는 점차 차근이와 다래의 따뜻한 마음을 닮아간다. 도승이는 차근이에게 다른 마을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일 년에 딱 한 번 두 마을 사람들이 만나 물물교환을 하는 날, 셋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망가진 물건들을 고치고 있는 할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할아버지는 "날 찾겠다고 예게까지 왔다야~"며 반가워하지만 돌아가지는 않겠단다. 아직 뼈가 옹골지다며 자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 곁에 남고 싶다고 한다. 대신 할아버지는 차근이에게 열쇠고리를 만들어 준다. 열쇠고리를 볼 때마다 차근이는 할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에 대한 추억을 떠올릴 것이다.

제3회 마해송 문학상을 수상했다. 주인공과 함께 기억의 호수를 따라가다 보면 잃어버린 추억 몇 개가 '부글부글' 끓다가 '펑펑' 하고 솟는다. 우리의 머릿속에도 기억의 호수가 있나보다.

김경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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