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 학생 하나도 안부러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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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학교 2학년생 이경숙(13)양은 전체 주민이래야 60여명에 불과한 농촌 마을에 산다. 그러나 도시 아이들도 배우기 쉽지 않은 바이올린을 올해 2년째 배우고 있다.

같은 반 친구 15명도 경숙이처럼 바이올린을 켜거나 비올라.첼로.피아노.오르간을 다룰 줄 안다.

경숙이는 "종종 집에서 내 바이올린 연주에 맞춰 온 가족이 모여 즐거운 노래 대회를 열기도 한다"며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친구들이 하나도 부럽지 않다"고 말했다.

전북 남원시 사매면 용북중학교는 1949년 설립돼 올해 54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사학(私學)이다. 10여년 전만 해도 전교생이 7백여명이나 됐지만 농촌 인구가 줄면서 현재는 1~3학년 각각 한반씩, 전교생이 58명밖에 안되는 미니 농촌학교다. 그러나 교육 환경과 프로그램은 웬만한 도시학교를 앞설 정도로 알차다.

이 학교는 특기적성 교육 차원에서 2년 전부터 '1인 1악기'교육을 시키고 있다. 학교는 2천여만원을 들여 바이올린.비올라.첼로 등 현악기 30여대를 구입했다. 학생들의 레슨을 위해 광주.전주 등지에서 전문 강사도 초빙했다.

학교와 재단의 전폭적인 뒷받침 덕분에 한가지 악기를 능숙하게 다루게 됐고 조회나 예배시간 등 학교 행사 때면 학생들이 모든 연주를 떠맡고 있다.

방학을 이용한 무료 영어캠프와 해외 어학연수도 이 학교의 자랑거리다. 이번 겨울 방학에는 다음달 5일부터 '영어캠프'가 2주간 실시된다. 뉴질랜드.캐나다 출신 원어민 교사 3명과 해외 어학연수 경험이 있는 대학생 4명이 하루 3시간씩 영어로 말하고 듣기 능력을 집중적으로 가르칠 예정이다. 오후에 3시간은 주변 마을에 사는 초등학생들을 불러 똑같은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그리고 방학 캠프에는 교사와 학생이 합숙을 하면서 수학캠프와 음악캠프도 함께 진행된다.

학생들에게는 무료 해외연수 기회도 주어진다. 지난해에는 1학년생 16명 전원이 캐나다로 2주간 어학연수를 다녀 왔으며 올해는 3학년생 2명을 뽑아 3주 일정으로 뉴질랜드에 보낸다. 지난해 캐나다 벤쿠버에 갔다 온 2학년 이명수군은 "난생 처음 비행기도 타고 태평양을 건너가 설계사 아저씨 집에서 민박하면서 즐거운 경험을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용북중 황의백(60)교장은 "비싼 돈을 들여 과외를 받거나 학원을 다닐 형편이 못되는 우리 학생들이 도시 아이들에 못지 않은 실력을 갖고 세계를 향한 큰 꿈을 키울 수 있도록 각종 지원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학교는 또 변변한 문화시설이 없는 농촌 지역의 특성을 감안, 학생과 학부모들을 위해 컴퓨터실.도서실.음악실 등을 연중무휴로 밤 8~9시까지 열어 놓고 있다.

류정수 재단 이사장은 "아이들이 시골에서 학교를 다닌다는 이유로 문화적 혜택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웠다"며 "때묻지 않은 순수함이 좋은 인성으로 활짝 꽃피우고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능력이 빛을 볼 수 있도록 최대한 뒷받침하겠다"고 밝혔다.

남원=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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