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정당과 민주주의/문창극 워싱턴특파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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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난 2월 뉴햄프셔의 예비선거를 취재하러 갔을때 어린 아이나 학생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유세장에 나오는 것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이번 텍사스주 휴스턴의 미 공화당 전당대회장에도 역시 부모를 따라 나선 어린이들이 유난히 많은 것이 눈에 띄었다.
어떤 정당에 대한 지지가 대를 이어 내려가는 것이 바람직한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최소한 부모가 어느 정당을 지지하고 있다는 것은 자연히 자식들에게도 전달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공화당 집안』혹은 『우리집은 민주당 지지』라는 인식이 자연히 심어지게 되며 이러한 과정에서 민주주의가 무엇인지,왜 정당정치가 자리잡아야 하는지 몸으로 깨닫게 되는 것이다. 공화당만 해도 그 역사가 에이브러햄 링컨대통령 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니 근 1백50년이 된다.
민주당의 경우는 이보다 더 역사가 깊어 1백70∼1백80년은 되니 적어도 증고조할아버지 이전부터 미국 국민들은 비록 그때그때마다 지지하는 정당은 변할 수 있지만 공화당과 민주당에 투표해왔다.
우리의 상황과는 너무나 대조적인 것이다. 해방후 짧은 50년동안 수십개의 정당이 부침했으니 『아빠는 어느 정당을 지지했고 지지하고 있다』는 말을 자식들에게 남길 수 없다.
유권자가 한 정당에 투표하여 대표를 선출해 놓았는데 어느날 갑자기 그 당은 없어지고 자기가 뽑은 대표는 다른 이름의 당으로 가 있는가 하면 사람은 계속 같은데 그가 내거는 정당의 이름은 10년도 안되는 기간에 얼마나 바뀌는지 셀 수가 없을 정도다. 우리 정치사를 공부하는 학생들은 정당이름을 외는데만도 골머리를 썩일 것이다.
그러니 국민들이 정치를 「권력을 좇는 무리들의 이합집산」이상으로 보아주지 않는다.
우리 정치가 제대로 되려면 국민들의 정당에 대한 인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당이 어느 힘있는 개인의 사유물화되어서는 안되며 정치제도로 정착돼야 한다.
우리도 『아빠는 어느 정당을 지지해왔다』는 말을 자녀들에게 남길 수 있는 날이 빨리 와야겠다.<휴스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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