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상 후예들 "우리가 개혁·개방 마무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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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샤오핑(鄧小平)의 순차적인 개혁.개방 전략에 따라 30년 가까이 동부 연안 개발에 주력했던 중국이 이젠 중부.서부.동북 등 주변지역 개발에 나서고 있다. 중부지역 중에서도 특히 안후이(安徽)성은 최고 권력자인 후진타오(胡錦濤) 국가 주석과 권력 서열 2위인 우방궈(吳邦國)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의 고향이어서 중앙정부가 각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15~18일 현지를 취재했다.

안후이 출신의 국제 경제인 모임인 제3회 중국국제휘상대회가 18일 안후이성 허페이에서 열리고 있다. 국내외 휘상 등 1만여 명이 참가한 이번 행사에선 500억 위안(약 6조원)의 투자 유치가 이뤄졌다. [허페이=장세정 특파원]

중국 중부지역에 있는 안후이성 지시(積溪)현의 주요 도로변에는 16일 '휘상(徽商:휘주 출신 상인)의 고향(故里)'이란 대형 홍보 간판이 내걸렸다. 이곳은 중국 최고 지도자인 후진타오 주석의 본적지다. 후 주석은 상하이(上海)에서 출생했지만 그의 부친은 '휘주(徽州)'로 불려 온 이곳에서 태어났고, 후 주석 본인도 "나는 안후이 지시 사람"이라며 이곳을 고향으로 여겨 왔다.

이날 찾았던 지시현은 최고 지도자의 고향이자, 해마다 18만 명의 한국 관광객이 찾는 황산(黃山)이 가까이 있지만 아직 개발의 기운이 제대로 미치지 못한 분위기였다. 개혁.개방을 추진한 덩샤오핑은 선전(深?)을 비롯한 동남부 지역을 먼저 개발했고, 장쩌민(江澤民)은 상하이를 포함한 창장(長江)강 삼각주 지역을 집중 개발했다. 이 때문에 지난 30년간 동부 연안지역이 빠르게 발전하는 동안 이곳을 비롯한 중부지역은 상대적으로 낙후한 상태에 머물러야 했다.

그러나 안후이성을 포함해 허난(河南).산시(山西).후베이(湖北).후난(湖南).장시(江西)를 묶는 중부 6개 성(省)이 지난해 4월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중부 굴기(起:우뚝 선다는 뜻) 전략'에 따라 경제성장의 기지개를 펴기 시작했다. 동부연안특구→서부대개발→동북진흥에 이어 이제는 중부 개발에 역량을 집중 투입하기로 했다. 개혁.개방의 사각지대로 불렸던 중부가 마침내 햇빛을 보게 된 것이다.

18일 안후이성의 중심 도시 허페이(合肥) 시내 대형 전시장에선 '제3회 국제중국상인(華商)대회'가 성대하게 열렸다. 안후이성 대표 주자인 휘상을 비롯, 글로벌 500대 기업 중 106곳이 참가했다. 안후이성 관계자에 따르면 이날 행사에는 1만여 명이 몰렸다. 이들 중 상당수는 중앙정부와 안후이성이 제시한 인프라 프로젝트를 비롯한 각종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이곳을 찾았다.

◆중앙정부 안후이에 집중 지원=중앙정부는 막대한 예산을 배정해 중부 6개 성의 도로.철도.공항 등 교통망을 확충하는 대대적인 토목 공사를 벌일 계획이다. 철도부는 2020년까지 중부의 철도 건설에 4500억 위안(약 54조원)을 투자해 6500㎞의 철도를 신설할 예정이다. 낙후한 허페이 공항은 3년 뒤에는 초현대식으로 거듭날 예정이다. 특히 안후이성 북부의 농촌 펑양(鳳陽)현은 덩샤오핑이 집단 농장인 인민공사를 폐지하고 개인의 이윤 추구를 인정한 농가생산 도급제를 실험했던 곳이다. 중국의 오늘이 있게 한 개혁.개방의 불씨가 이곳에서 처음 지펴졌다. 따라서 중국인은 이곳의 발전이 개혁.개방 정책의 마무리란 의미를 지닌다고 보고 있다.

◆최고 권력자에게 안후이성 상인의 피 흘러=중부 6개 성 중에서도 특히 관심이 쏠리는 곳이 안후이성이다. 후진타오는 물론 권력 서열 2위인 우방궈 전국인민대표대회(全人大:한국의 국회) 상무위원장도 안후이 출신이다. 허페이 인근의 페이둥(肥東)에서 태어났다.

이뿐만 아니라 차세대 주자로 거론되는 리커창(李克强)도 안후이성 딩위안(定遠) 출신이라 이래저래 안후이성에 힘이 실리고 있다. 실제로 안후이에는 후 주석의 '후광 효과'도 만만찮게 작용하고 있다. 중부 굴기 전략이 후 주석의 권력 기반이 탄탄해진 뒤 추진된 것이 단적인 사례다.

장쩌민(江澤民) 전 주석과 후 주석이 모두 휘주 문화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사실에 현지 사람들은 자부심을 드러낸다. 청나라 건륭제(乾隆帝)의 생일 연회를 열어주고 정원을 지어줄 정도로 거부였던 염상(鹽商:소금 상인) 장춘(江春)은 장 전 주석의 조상이고, 유명한 거상 후쉐옌(胡雪岩)은 후 주석의 조상이다. 이래저래 안후이성에 힘이 실리는 것이다.

◆전 세계 휘상 후예가 개발 자금줄=안후이에 활기를 불어넣는 또 다른 세력이 바로 휘상들이다. 휘상은 송나라 때 지금의 안후이성 남부 휘주를 중심으로 형성돼 명.청 시대에 산시성 진상(晉商)과 더불어 중국 상권을 쥐락펴락했던 유명한 상인 집단이다.

허페이에서 열린 중국국제휘장대회에는 전 세계에서 자수성가한 휘상의 후예들이 고향에 투자하겠다고 대거 몰려들었다. 휘상에겐 부자가 된 뒤 고향에 투자하는 독특한 전통이 있다.

이번 행사에 참석한 상하이 소재 부동산 업체 소속의 한 휘상은 "사업도 하고 고향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이번 대회를 조직한 왕진산(王金山) 안후이 성장은 "국내외에서 활동해 온 휘상들이 안후이 발전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허페이시 관계자는 18일 "이번 휘상대회를 통해 500억 위안(약 6조원)가량의 투자 유치가 이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막대한 자금이 이 지역에 투자될 것이란 얘기다.

권력의 비호를 받으며 급성장해 관상(官商)으로도 불렸던 휘상. 그 후예들이 권력과 재력을 어떻게 결합시켜 안후이의 번영을 도모할지 주목된다.

허페이.지시=장세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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