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책갈피] '육체의 문화'를 발가벗긴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욕망하는 몸 루돌프 셴다 지음, 박계수 옮김, 뿌리와 이파리, 480쪽, 2만8000원

현대인들에게 몸에 나는 털은 그다지 유용한 것이 아니다. 특히 여성에게는 그것을 제거하기 위해 몸서리치는 고통(테이프를 떠올리면 이해가 쉽다)을 감내할 만큼 귀찮은 존재다. 옛날 여성들 역시 그랬나 보다. 1616년 발간돼 증쇄를 거듭했다는 가브리엘 팔로피오의 책 '비밀'에서는 털로부터 인간을 해방할 약제 조제법을 제시한다. "박쥐 다섯 마리를 잡아 그것을 태워 재를 만들어라. 그리고 개미들로 하여금 이것을 분해하게 해서 연고처럼 되면 원하는 부위에 발라라. 그러면 어떤 털도 나지 않을 것이다." 글쎄, 틀린 말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여성들이 박쥐 다섯 마리를 잡아 개미들이 그걸 연고처럼 만들 때까지 기다리다 보면 귀찮은 털을 신경 쓰지 않아도 좋을 나이가 될 테니 말이다.

이처럼 인간의 몸은 흔히 탐미적 시각에서 접근돼 왔다. 시대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단단하고 날씬한 몸은 물컹하고 뚱뚱한 몸에 비해 각광받는다. 육체를 단순한 물질로 경멸해야 하며 영혼만을 살찌울 필요가 있다는 금욕적 관념은 광범위한 육체 지상주의에 대한 한줄기 반작용이며 과거 참수나 육시 등 신체를 자르는 형벌 또한 육체를 훼손시켜 모욕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그렇다면 왜 육체를 가지고 이렇게 야단법석을 떠는 걸까. 스위스 출신의 민속문학자인 저자는 의학적 지식은 물론 성경.전설.연대기.동화.시.소설.희곡.신문기사.유행가까지 인용해 이 질문에 대답한다. 한마디로 이 책은 육체의 문화사이자 육체를 다루는 방법의 문화사다.

저자는 사람들이 늘 운전을 하면서도 자동차 겉모양만 신경 쓸 뿐, 보닛 속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고 하지 않는 것처럼 자기 몸의 내부에 대해 관심을 갖지 않는 걸 안타까워 한다. 우리의 육체를 존중하기 위해 우리는 의사보다 더 우리 몸을 더 잘 알아야 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의사가 진찰하는 시간은 고작 30분에 불과하니까). 그래야 우리의 육체가 규격화된 미적 기준을 벗어나 "존중과 애정, 그리고 매일 매일 최소한의 관리, 특히 정신적 관리를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훈범 논설위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