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옵션, 배보다 배꼽이 더 커지겠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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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만한 배꼽.'

회사원 김상현(35)씨는 최근 갖고 있는 중고차를 팔고 새 차를 사려다 포기하고 말았다. 당초 세웠던 예산에 비해 차의 가격이 턱없이 비쌌기 때문이다.

김씨가 예상한 가격은 1000만원 정도. 최근 잘나간다는 준중형 승용차를 사기 위해 지난 3년 동안 적금을 들어 마련한 '거액'이었다. 3년 전만 해도 이 금액이면 차량 구입에 큰 문제가 없었다. 하지만 김씨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이것저것 필요한 사양을 붙이려다 보니 수백만원의 추가 예산이 필요했던 것이다. 이른바 '옵션의 함정'이었다.
 
현재 국내 완성차 업계가 내놓은 승용차 및 SUV 모델은 약 40개. 하지만 같은 모델이라도 사양에 따라 다시 세분화된다. 기본형·고급형·최고급형에 다시 최고급 프리미엄·최고급 럭셔리 등으로 이름 붙이는 식이다.
 
가격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될 때마다 5~10%씩 오른다. 일부 모델의 경우 업계가 추천하는 옵션을 모두 채택할 경우 기본 사양에 비해 60% 이상 껑충 뛰어오른다. '배만한 배꼽'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다.

문제는 자동차 업계가 이것에 대해 옵션이란 단어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대신 기본 사양 또는 기본 품목이라는 이름으로 표현한다.
 
종류만도 100여 가지에 이른다. 대부분 운전자의 편의를 위한 장치란 것이 업계의 주장이다. 하지만 차량 운행에 전혀 필요가 없거나 단 한 번도 사용하지 않는 사양도 적지 않다.
 
그럼에도 소비자의 선택권은 제한된다. 일부 품목을 빼려고 하면 오히려 별도의 제작 공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차량 가격을 올린다. 업계 관계자는 "기본 사양 장착은 오랜 기간 소비자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다. 이를 바탕으로 생산 라인을 구성했기 때문에 소비자의 요구를 모두 충족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해명한다.
 
차량에 장착돼 출시된다는 이유만으로 턱없이 비싼 품목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내비게이션이다. 최근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내비게이션은 하루가 다르게 업그레이드되고 있다. 모델의 다양화와 함께 경쟁이 붙으면서 50만원 내외면 최신형 내비게이션 구입이 가능하다.

그런데 자동차에 옵션으로 장착되는 내비게이션 가격은 반대로 달리고 있다. 최소 100만원이 넘을 뿐만 아니라 대형차에 장착되는 최고급 모델은 수백만원을 호가한다. 업계는 내비게이션에 DVD와 AV 등 다양한 기능을 넣어 가격이 셀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분석이다.

또 하나 '피할 수 없는' 옵션이 변속기이다. 현재 국내 완성차 업계가 내놓고 있는 차량 가운데 배기량 2000㏄급 이하의 중소형 모델의 기본 옵션은 수동 변속기이다. 변속기를 자동으로 바꾸려면 경차도 100만원 이상 지불해야 한다. 준중형이나 중형은 130~150만원이 필요하다. 소형 모델의 경우 변속기는 물론 에어컨도 옵션으로 별도 판매한다.
 
옵션은 말 그대로 표준 장치 외에 소비자의 기호나 취향에 따라 별도로 선택해 부착할 수 있는 장치나 부품이다. 그런데 자동차 업계가 여기에 불필요한 장치까지 한데 묶어 패키지로 판매한다는 것이 문제다. 이로 인해 차량 가격이 터무니없이 오르고 있다는 지적이다.

박상언 기자 [separk@ilgan.co.kr]

[일간스포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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