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쇄 찍는 안도현의 어른동화 '연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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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어른을 위한 동화 '연어'(문학동네)가 다음주 100쇄 인쇄에 들어간다. 1996년 3월 처음 찍었으니 12년만의 결실이다. 물론 100쇄를 넘어선 한국문학은 '연어'말고도 여럿 더 있다. '연어'는 기껏해야(?) 75만 부 팔렸을 뿐이다.

그럼에도 '연어'에는 각별한 구석이 있다. '연어'는 단순한 베스트셀러가 아니다. '연어'로 말미암아 한국의 문화지형은 윤택해지고 풍성해졌다. 연어를 모티브로 삼은 문화 콘텐트가 가요.연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거듭 생산되었고, 급기야 연어는 고등어나 갈치처럼 친숙한 생선이 되었다. '연어'의 지은이 안도현(46.사진) 시인을 만나, 이 거칠 것 없는 연어의 힘을 캐물었다.

-축하한다. 이렇게 잘 될 줄 알았나.

"몰랐다. 기껏해야 3000부 나가면 성공이라고 예상했다. 지금 생각해도 희한한 게 있다. '연어'는 한 번도 대박을 치지 못했다. 첫 해에 10만 부가 나갔고 십 년이 넘도록 한 달에 5000~1만 부씩 꾸준히 나간다."

-지금은 관용어가 돼버린 '어른을 위한 동화'란 말은 사실 '연어'로부터 기원한 것이다. '연어'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96년 문학동네 강태형 사장이랑 시리즈 이름으로 개발한 것이다. 사실은 말이 안 되는 조어(造語)다. 하지만 개척이란 생각은 안 했다. 당시 출판사 영업 쪽이 난감해 했다는 얘길 들었다. 아동물인지 성인물인지 분류가 어려워 마케팅에 애로가 많았단다."

-'어른을 위한 동화'란 개념을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초등학교 때는 동화를 읽고, 중학교에 올라가면 '데미안' 같은 세계문학전집을 읽는다. 그 사이의 징검다리쯤 되는 읽을거리가 되지 않을까. 사실 난, 문학청년 시절부터 '어린 왕자'와 같은 책을 쓰고 싶었다. 처음엔 20대 여성이 많이 찾았는데 요즘엔 청소년으로 독자층이 내려갔단다. 잘 된 일이다."

-책이 스스로 제 독자층을 찾아갔다는 말인가. 연어가 제 죽을 곳을 찾아 강물을 거슬러 오르듯이?

"요즘 거의 모든 중.고등학교에서 '연어'는 추천.권장도서 목록에 올라 있다. 그 덕분일 것이다. 이는, 무엇보다 '연어'가 팔아먹기 위한 책, 그러니까 상업주의의 기획물이 아니란 사실을 증명한다."

-묻기도 전에 아픈 곳을 먼저 드러내다니, 좋다. 이 김에 '연어'에 대한 비판을 말하자.'연어'의 성공 뒤에는 문학의 연성화가 있다는 소리가 파다하다.

"알고 있다. 소설의 입장에서 보면 타당한 시비다. 그러나 '연어'는 애초부터 성인 독자를 겨냥한 책이 아니었다. 눈높이를 낮추려면 일정 정도의 연성화나 단순화가 불가피했다. 상업주의 혐의는 이 책이 중.고교 추천도서로 활용되고 있다는 사실로 벗어났다고 본다."

-개인 안도현에게 '연어'는 어떤 책인가.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됐다가 전북의 한 고교에 94년 복직했다. 그때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 복직했을 때 3년 뒤에는 교직을 그만둘 생각이었다. 학교에 정나미가 떨어졌기 때문이다. 비로소 전업의 길에 들어섰을 때 '연어'는 경제적으로나 정서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었다. 그래서 고맙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안도현은 '연어'의 작가로 불리고 있었다. 이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시인이다. 내 주종목은 물론 시다."

'연어' 100쇄 인쇄를 기념해 '연어 콘서트'가 25일 오후 8시 서울 명동성당에서 열린다. 참가신청은 인터파크 홈페이지(book.interpark.com). 지은이도 100쇄 인세를 아름다운 재단에 기부하기로 했다.

글=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사진=변선구 기자 <sunnin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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