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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열정으로 영화를 바라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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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60회를 맞은 칸영화제가 본격적인 '경쟁 모드'로 들어갔다. 지구촌 각국에서 출품된 장편 22편의 우열을 가릴 심사위원단의 공식 기자회견이 16일(현지 시간) 오후 열렸다. 행사장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사람은 영화인이 아니라 소설가였다. 지난해 노벨문학상을 받은 터키 소설가 오르한 파무크(55.사진)다. 그는 노벨상 '후광효과'로 심사위원이 된 것은 아니다. 파무크는 "지난해에도 제안을 받았지만 바빠서 참석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활자에 비해 영상을 우위에 놓으려는 이 시대에도 파무크의 소설은 영상을 능가하는 상상력을 자극한다. 터키 고유의 문화를 바탕으로 스릴러적인 장치, 그리고 여러 주인공의 시점에서 번갈아 서술하는 독특한 기법의 소설 '내 이름은 빨강'이 대표적이다. 파무크는 본래 건축을 공부하다 작심하고 소설가가 된 인물이다. 터키의 전통과 정치사회적 갈등을 정교하게 구축하는 솜씨는 '새로운 인생''하얀 성'''검은 책''눈' 등의 작품을 거치면서 서구비평가들을 감탄시켜왔다.

기자회견장에서는 그는 본업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영화에 큰 의욕과 흥미를 드러냈다. 경쟁작에 서열을 매겨야 하는 심사위원의 부담에 대해서 묻자 이렇게 답했다.

"어린 아이의 열정을 가지고 영화를 보는 거죠. 아빠한테 '이게 최고요, 나는 이게 좋아'하고 말하는 식으로요. 그게 재미있는 부분이죠." 영화란 특별한 준비나 정보 없이 어린이의 마음으로 즐기는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는 칸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도 "1960년대였던 것은 같은데 해변에서 찍힌 아름다운 여자의 사진을 봤다"면서 "그때부터 칸에 오고 싶었다"고 대답해 좌중을 웃겼다. 그의 작품이 영화화된다면, 그래서 영화제에도 초청된다면 어떨까.

"작가들은 자신의 책이 영화가 되기를 원하면서도, 그게 좋은 영화가 될 거냐는 의심이 있습니다. 나는 아마도 영화화를 허락하지 않을 거에요. 하겠다고 문을 두드리는 사람도 없고. 또 좋은 영화가 되려면 정력과 집중력이 그만큼 필요하니까요. 예전에 헤밍웨이가 한 말이 있습니다. '할리우드는 돈을 주고, 당신은 작품을 주는데, 그 관계는 통제가 안 된다고'요."

기자회견에서는 홍콩 출신 여배우 장만위의 화려한 말솜씨가 돋보였다. 친구인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가 경쟁부문에 올라 심사대상이 된 것을 두고 "나도 친구들로부터 심사를 많이 받아봤다"고 맞받아치는가 하면, 질문자에 맞춰 영어.불어로 고루 답변을 들려줬다.

올해 공식경쟁작 22편의 심사위원은 이들을 포함, 감독.배우 등 모두 9명이다. 심사위원장은 '퀸'의 영국 감독 스티븐 프리어즈가 맡았다. 프리어즈 감독은 "칸영화제는 미국 할리우드에 대한 대안영화의 정점"이라면서 "예술영화에 대한 수요는 계속 있으며 반드시 만들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칸=이후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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