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오른 바르셀로나 성화(사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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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중해를 굽어보는 바르셀로나의 몬주익 언덕에 인류의 평화를 열망하는 거대한 불꽃이 타오르기 시작했다. 지구촌 최대의 축제인 제25회 바르셀로나올림픽이 한국시간 26일 새벽 하나의 불화살이 성화를 점화시킴으로써 개막된 것이다. 세계 1백72개국가에서 모인 1만5천여 선수들은 앞으로 16일동안 25개종목,2백57개 경기에서 힘과 기량을 겨루며 대제전을 펼친다.
이번 바르셀로나올림픽은 다른 어느 여름올림픽 보다 각별한 의의를 지닌다.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 사회주의체제가 해체됨으로써 동서 냉전구조가 소멸된 상태에서 열리는 것이므로 과거와 같은 블록간,국가간의 갈등이나 적대감이 존재하지 않는다.
러시아가 주도하는 독립국가연합팀은 전에 동료였던 공화국들과 맞서야 하고,통일된 독일은 옛 적수들과 한팀이 되어 호흡을 맞춘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지난 60년 이후 32년만에,북한과 쿠바는 80년 이후 12년만에 다시 올림픽에 복귀했다. 이로써 바르셀로나올림픽은 인종과 이념의 굴레를 떨쳐버리고 온인류가 「영원한 친구」이기를 소망하는 한바탕 축제의 장이 되게 되었다.
다만 내전에 휘말린 유고가 국가대표를 보내지 못하고 개인자격의 참가만 허용된 것이 옥에 티로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모든 국가나 지역이 참가하는 평화의 제전」에 이렇게 국제정치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은 올림픽의 이상과 목적에 부합된다고 볼 수 없다.
바르셀로나올림픽에 임하는 우리의 감회는 남다르다. 88년 서울올림픽은 냉전구도속에서 반쪽대회에 그쳤던 80년 모스크바와 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의 좌절을 딛고 일어서 동서화합의 물꼬를 텄다. 이를 계기로 동서의 벽이 허물어져 오늘 사상 최대의 잔치가 가능해졌다는 자부심을 가질만 하다.
그러나 한편 남북한이 단일팀을 구성해 만방에 민족의 단합을 과시할 수 없어 유감이다. 민족의 정체성을 찾아 분리와 독립의 회오리가 불고 있는 국제적 상황속에서 통일은 커녕 스포츠팀 하나 단일화 하지 못한 점은 못내 부끄럽다. 현장에서나마 남북의 선수들과 응원단이 한마음으로 응원하고 격려하는 흐뭇한 정경을 보였으면 한다.
우리나라는 이번 대회에서 금메달 12개를 획득해 세계 4강에 들어가겠다는 목표를 세워두고 있다. 이러한 목표는 지난번 서울올림픽의 종합성적을 근거로 한 것이다. 당시 예상외의 좋은 성적은 홈그라운드라는 이점이 가세한 결과였다.
축제는 축제로서 최선을 다한다는데 의의가 있는 것이지 성적에 너무 집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선수들의 선전을 바랄뿐이다. 또한 국민들도 일상을 일탈하는 지나친 관심보다는 차분한 마음으로 이들이 최선을 다하도록 응원하고 격려하는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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