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명 중학생들/과연 소매치기 했나/엇갈리는 가족­경찰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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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현장 목격됐고 면회때 가족에 고백도 했다” 경찰/“겁주며 강압수사·반성문도 조서에 맞춘 것” 가족/“폭행규명 등 검찰이 나서야” 여론
경찰관이 자신의 부인을 소매치기 피해자로 꾸며 중학생 2명을 구속시킨 사건은 언론의 보도(중앙일보 21일자 사회면)로 결국 조작사실은 확인됐으나 이번에는 학생들이 소매치기를 했는지의 여부를 둘러싸고 경찰과 학생가족들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경찰은 학생들이 유치장과 감호소에 들어가 있을때 면회온 부모들에게 말한 내용 등을 근거로 소매치기가 분명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가족들은 『얼마나 겁을 줬던지 부모에게도 사실을 말하지 않다 풀려난 뒤에야 비로소 억울함을 호소하기 시작했다』며 경찰의 강압수사에 대해 분통을 터뜨리고 있다.
◇경찰주장=경찰이 강모(13)·이모(14)군 등 중학생 2명을 소매치기로 보는 가장 큰 근거는 구속된 이 형사 등 당시 이들을 연행한 경찰관 2명의 진술이다.
이들은 『강군 등이 핸드백에서 돈을 꺼내는 것을 여러번 목격하고 추적했다』고 말했다. 소매치기의 경우 경찰관의 현장목격이 증거능력을 인정받고 있다.
경찰이 또다른 증거로 삼는 것은 강군 등이 가족과 면회할때 범행을 인정하는 듯한 말을 했다는 것이다.
이군이 지난달 15일부터 17일까지 가족과 만나 말한 내용을 기록한 경찰서 유치인 접견부에는 『엄마가 다 용서한다』『미안해요』(15일) 『반성 많이 했어요. 왜…』『돈이 좀 필요해서 말예요. 다음부터는 절대 이런일 없도록 할게요』(16일) 『어쩌다 그랬어』『시장구경하다가』(17일) 등의 내용이 적혀 있어 범행을 인정하는 듯한 느낌을 준다.
또 강군이 안양감호소에서 쓴 반성문에는 『남대문시장에서 구경하다 친구가 돈을 훔쳐보자고 그랬다. 호기심에서 충동적으로 모두 네번 해서 8천원 훔쳤다. 정말 진심으로 반성하고 있다』고 적혀있다.
경찰은 이군이 검사방에서도 적극적인 부인을 하지 않은 것이 범행을 인정했기 때문이며 따라서 수사과정에서 피해자를 조작하긴 했지만 강군 등의 범행은 사실이라는 주장이다.
◇반박=강군 등은 이에 대해 『연행당시 안했다고 부인하는데도 뺨을 때리고 수갑을 채운채 끌고가 너무 무서웠다. 형사들이 소매치기를 한 시간과 장소 네곳을 불러주며 인정하면 곧 풀어준다고해 그대로 따랐으며 소매치기는 안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들은 또 『유치장에 면회온 가족들에게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은 것은 가족들이 항의하고 나서면 또다시 형사들에게 불려가 혼날 것 같아서였다』고 말했다.
연행당시 강군 등이 형사들로부터 매를 맞고 수갑까지 채워져 심한 공포상태에 빠져 있었던 것은 사실로 확인됐다.
또 강군이 쓴 반성문은 이미 허위임이 밝혀진 경찰조서내용과 똑같이 「네차례 8천원을 소매치기했다」고 적혀있어 이 반성문이 범행을 인정해서가 아니라 경찰조서내용과 맞춘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문제점=이 사건은 『열사람의 범인을 놓치더라도 한사람의 억울한 피해자를 만들면 안된다』는 법언이 얼마나 철저히 무시되고 있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경찰은 강군 등을 구속시킨 유일한 근거인 피해자 진술이 조작임이 드러났는데도 조서까지 조작한 경찰관들의 일방적 주장만을 근거로 증거도 없이 강군 등을 소매치기로 몰아붙인 「인권유린」을 자행했다.
경찰관들이 피해자를 조작하지 않았고 강군 등이 정말 소매치기범이었다 해도 피해액이 단돈 몇천원이고 범행전과가 없는 학생인 점을 무시한채 끌고가 폭행하고 구속시킨 것은 경찰이 얼마나 실적위주의 단속과 수사를 하고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다.
실제로 경찰관들의 피해자 조작보도가 나간뒤 본사에는 『경찰관만의 현장목격증언과 강요된 자백만으로 억울하게 구속됐다』는 전화가 잇따라 걸려오고 있으며 제보된 피해자의 대부분이 중학생이하여서 경찰이 평소 자기주장을 제대로 펴지 못하는 어린학생들을 상대로 강압수사를 해왔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결국 이 사건은 경찰의 자체조사로는 한계가 있으며 상급기관인 검찰이 나서 재수사를 벌여야 한다는 여론이다.<김종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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