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 몸사려 대출 늑장/정보사땅 사기 경제전반 주름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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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사채시장도 막혀 중기자금난 가중/단자사 등 1억이상 예금 발길 끊겨
금융기관이 연루된 정보사땅 사기사건에 대한 수사가 1주일이상 이어지면서 그 여파가 경제전반에 미치고 있다. 사채시장에선 「큰손」들이 잠적해 돈이 돌지않고 있다. 그 여파는 일부이긴 하지만 기업들에 미치고 있으며 금융기관들이 몸을 사리는 바람에 대출을 받는데도 서류와 시간이 많이 걸린다는 불평이 나오고 있다.
이번 사건과 관련,고객돈을 관리하는 금융기관들은 마땅히 기울여야할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은 잘못이 감독당국에 의해 밝혀지면서 금융기관 창구에선 평소보다 규정을 빽빽하게 챙긴다.
회사원 신모씨는 10일 자기부인명 통장에서 1백만원을 찾기 위해 한 시중은행을 찾아갔으나 비밀번호를 잊어버려 애를 먹었다. 결국 그 은행에 근무하는 친구에게 부탁해 어렵사리 예금을 꺼낼 수 있었다.
○…창구업무 위축과 거액 전주들의 잠적으로 자금흐름이 원활치 못한 편이며 이같은 현상은 당장 돈이 필요한 기업들을 초조하게 만들고 있다.
사채시장의 위축은 이 시장과 맞닿아 있는 단자회사나 신용금고업계에 영향을 미쳐 최근엔 1억원이상의 거액예금은 발길이 감춘 것으로 전해진다.
『자금공급이 잘돼야 이를 재원으로 기업들에 대출도 해주게 마련인데 「큰손」들이 잠적하는 바람에 그만큼 주름살이 오고 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고 단자업계 관계자는 말했다.
최근 서울 명동 사채시장에 나오는 자금규모가 평소의 8분의 1 정도인 20억원안팎에 불과한 것도 이같은 현상을 대변한다.
그러나 관계자들은 단자사 자금은 주로 대기업들이 써왔고 사채자금 또한 신용도가 좋은 기업들만 급전으로 쓰던 것이어서 이번 사건의 여파가 허약한 중소기업들의 부도에 직접적인 요인은 되기 힘들다고분석했다.
한편 이번 사건은 6일부터 증시를 강타해 주가가 연속 8일 하락이란 타이기록을 세우며 4년7개월전인 87년말 수준으로 추락하는데주요인이 됐다.
당초 증권당국은 제일생명·국민은행이 상장사가 아니어서 주식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별로 없으리라고 예상했으나 사건의 배후에 관심이 쏠리면서 정치권에까지 비화되고 사채시장에까지 조사손길이 미치자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 시작했다.
사직 및 금융당국의 조사여파로 사채시장은 급격히 위축됐으며,이는 증시에서의 큰손이탈과 중소기업의 자금악화설로 이어져 투자심리를 급격히 냉각시켜 주가하락을 부채질했다.
증권가는 또 만약 제일생명측이 고객들의 보험해약사태 등으로 자금난에 몰린 나머지 갖고 있는 유가증권(주식 2천9백억원어치,채권 4천8백억원어치)을 증시에서 팔기 시작할 경우 그렇지 않아도 침체된 증시에 더욱 큰 걸림돌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와 함께 보험회사들도 이번 사건의 파장이 당장 크게 나타나지는 않더라도 앞으로 상당기간 어려움을 겪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현재로선 해약사태가 일어나거나 신규가입이 크게 주는 것은 아니고 다만 제일생명의 경우만 신규가입이 다소 줄고있는 추세다.
그러나 보험업계의 신뢰도 실추는 결국 보험가입을 고려해볼 잠재적 고객수요를 크게 줄여 조만간 그 타격이 가시화될 것으로 업계 관계자들은 우려하고 있다. 실제로 사건발생이후 신규권유를 하기가 훨씬 어려워졌다는 모집인들의 호소가 늘고있는 실정이다.
재무부와 보험감독원은 비슷한 사건이 재발하지 않도록 생보사들의 자산운용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한편 임원들의 전결권한을 대폭 축소하기로 했는데 업계에서는 이에 따라 자산운용의 융통성이 줄어 운용효율이 떨어질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사건이 애초 은행예금 2백30억원의 행방이 묘연해진데서부터 노출되기 시작했고,또 갈수록 보험사·은행·신용금고 등 금융기관들이 규정을 크게 어겨온 사실들이 드러나자 감독당국인 재무부는 전점 더 입이 무거워져가고 있다.
특히 수사 결과 사건의 전모가 아직 납득할 만큼 밝혀지지 않았고 보험감독원의 검사도 주말인 11일에야 일단 끝난 상태에서 성급하게 관련금융기관장에 대한 문책이 곧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돌자 재무부관계자들은 불편한 기색을 굳이 감추지 않고 있다.
어쨌든 수사결과가 나오고나서야 감독당국으로서의 문책조치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 재무부의 당연한 입장인데,이번 일을 계기로 보험감독원으로 하여금 보험사의 부동산 보유와 자산 운용실태에 대해 곧 일제검사를 나가도록 하겠다는 것이 아직까지 재무부가 내놓은 대책이라면 대책이다.<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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