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명과 신예의 반란 … 팬들도 놀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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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한국 뮤지컬계 간판스타인 남경주(左)와 최정원이 함께 레드카펫을 오르고 있다. 시상식에 참석한 오만석(남우인기상), 오나라(여우인기상), 김우형(남우신인상), 이정미(여우신인상)씨의 모습(사진 왼쪽부터).

둘은 닮은 꼴이다. 성악을 전공해 탄탄한 기본기가 닦여 있다는 점도, 어느새 데뷔 10년차에 접어든 30대 중반이지만 유독 상복(賞福)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점도 그렇다. 최고의 기량을 갖추고 있으면서도 대중의 뜨거운 호응을 얻지 못했던 둘은 '더 뮤지컬 어워즈'를 통해 비로소 뮤지컬 최고 스타로 우뚝 섰다.

남우 주연상 민영기

조근조근한 말투, 쉽게 감정을 드러내 보이지 않는 표정. 긴 머리카락과 다소 주름진 얼굴까지. 민영기는 세상사 많이 겪은 듯한, 그래서 간단치 않은 청년의 기품이 풍기는 배우다. 그가 사랑과 권력의 회오리 속에서 인간 '정조'를 연기한 것은 딱 맞아떨어진 캐스팅이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는 호소력 짙은 음색. 그런 그도 한때는 '음치'였단다.

"고1 때였어요. 교회 합창부를 다닌 덕에 고등학교 합창단에 들어가려고 했죠. 아는 노래가 '선구자'밖에 없어 그걸 불렀는데 1차 오디션에 똑 떨어진 거예요. 지원자 20명 중 저만 유일한 탈락자였죠. 오기가 나 죽어라 혼자 연습해, '다시 한번 기회를 달라'고 사정했죠. 2차 오디션 끝에 합격한 거예요."

대학은 부모님의 뜻대로 공대 토목과를 지망했다. 떨어져서 재수를 해야 했다. 그런데 도저히 노래에 대한 미련을 버릴 수 없었다. 성악 레슨을 따로 받기로 했다. 과외비를 벌기 위해 부모님 몰래 6개월간 변압기 만드는 공장을 다니며 한푼 두푼 모았다. 그해(1992년) 7월부터 레슨을 받아 한양대 성악과에 지원했다. "합격자 발표가 나서야 부모님께 말씀드렸어요. 제 고집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셨죠."

뮤지컬은 2001년 서울예술단에 들어가면서부터 시작했다. '로미오와 줄리엣''태풍' 등이 그의 대표작. 그때 인연을 맺은 이윤택 연출가에 대한 믿음으로 '화성에서 꿈꾸다'를 택했고, 결국 배우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모든 건 이윤택 선생님 덕분입니다. 혼이 담긴 연기가 뭔지 알게 됐으니까요."

◆ 약력=▶1973년생▶명지고-한양대 성악과▶주요작-태풍, 로미오와 줄리엣, 지킬 앤 하이드, 겨울나그네

여우 주연상 김선영

그에게 따라 붙는 별명 아닌 별명 중 하나는 '창녀 전문 배우'다. 그의 최근작을 보면 알 수 있다. '마리아 마리아''지킬 앤 하이드'등에서 그는 거리의 여자로 분했다. 이번에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에비타'에서도 그는 퍼스트레이디가 되기 전까진 '팜므 파탈(남성의 삶을 운명짓는 여인)'의 삶을 살아왔다. "이런 모습이 너무 익숙해져 평상시에도 불쑥 나올까 걱정"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그는 일본에서도 꽤 유명하다. 지난해 '지킬 앤 하이드' 일본 공연 당시 조승우 못지 않은 관심을 받았다. '쉬리''말아톤'을 수입했던 아뮤즈 엔터테인먼트 요키치 오사토 회장은 "저런 배우를 지금껏 몰랐다는 게 신기할 뿐"이라고 평했다.

뮤지컬계에 입성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대전 혜천대 성악과를 나와 1995년 KBS 합창단에 들어갔다. '빅 쇼' 리허설 때 윤복희의 '메모리'를 듣곤 "내 길은 바로 저것"이란 생각이 들었단다. 그래도 노래 꽤 한다는 소문이 퍼져 뮤지컬 배우보단 가수의 길에 먼저 들어섰다. "가수로 인기 끌면 뮤지컬 하기도 쉽지 않을까라는 얄팍한 생각이 있었죠. 근데 IMF로 막상 음반도 나오지 못했어요."

그의 강점은 폭발적인 가창력. '에비타'에서도 격정적인 그의 노래는 관객을 전율시키기에 충분했다. 에둘러 말하지 못하고 언제나 솔직 담백한 성격이 노래에도 그대로 묻어 나온다. 특히 이번 '더 뮤지컬 어워즈'에선 여우 주연은 물론, '미스 사이공'의 엘렌역으로 여우 조연 후보에도 올랐다. "어제 잠을 설쳤어요. 2부문이나 올랐는데 하나도 상을 타지 못할 것 같았거든요. 지금 전 너무 행복하답니다. 제 인생 최고의 날이에요."

◆ 약력=▶1974년생▶계원예고-혜천대 성악과▶주요작-토요일밤의 열기, 와이키키 브라더스, 지킬 앤 하이드

<특별취재팀>
문화스포츠 부문=최민우.강승민.김호정.김경진 기자, 영상 부문=양광삼.김태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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