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위태로운 조선업 1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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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요즘 일본 경제는 수수께끼다. 이른바 잃어버린 10년은 까마득한 옛 이야기다. 경제는 탄탄하게 성장하고 물가는 제자리걸음이다. 엔화 약세로 수출은 늘고 도요타를 필두로 기업실적도 사상 최고에 육박한다. 일자리는 느는데 임금상승은 거의 없다. 그래서 신용평가기관인 S&P와 무디스는 일본의 국가신용등급과 일본 3대 은행 신용등급을 일제히 올렸다.

일본 언론들은 요즘 자동차.반도체.액정장치(LCD) 기업들의 설비투자 확대 소식을 끊임없이 전한다. 그동안 일본을 괴롭혀 온 과잉고용.과잉설비 악몽에서 벗어났음을 의미한다. 문제는 이런 일본을 단지 부러워할 수만 없다는 점이다. 무서운 기세로 한국의 전통적 강세산업까지 넘보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일본 중위권 조선업체인 이시카와지마하리마(石川島播磨)중공업이 38년간이나 문을 닫았던 아이치(愛知)현 조선 도크를 다시 가동한다고 보도했다. 미쓰비시(三菱)중공업도 2010년까지 400억 엔 규모의 증설투자를 계획하고 있다. 일본 조선업체들이 30여 년 만에 다시 선박 건조 능력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기술력이나 수주량으로 보면 아직 한국 조선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우리 업계는 "아무리 일본이 기를 써도 우리 상대가 되기 어렵다"는 반응이다. 하지만 마음 편하게 바라볼 상황이 아니다. 신문은 "일본 조선업체들의 증설은 한국과의 선박 건조 비용 격차가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예전에 한국에 비해 30%가량 높았던 일본의 선박 건조 비용이 지금은 엇비슷해졌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한국의 임금은 가파르게 상승하고 일본은 임금상승이 억제되고 있다.

한국은 세계 조선소 순위에서 1~5위를 휩쓸어 왔으나 올해 1분기에는 5위 자리를 중국 업체에 내줬다. 여기에다 일본도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최근 한국이 석권하고 있는 가스 운반선, 컨테이너선 등의 건조 기술은 일본 조선업체들도 다 갖고 있는 기술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임영모 박사는 "우리와 기술력이 비슷한 일본 조선업계의 설비 확장은 중국 업체의 증설과 차원이 다르다.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때마침 원-엔 환율이 외환위기 이전으로 돌아갔다. 한국 조선업체들이 1등에 안주할 때가 아닌 것 같다.

염태정 경제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