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못캐내는 “감질수사”/「정보사땅 사기」검찰수사 중간점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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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단순사기 추정… 배후규명 미흡/진술·주장 서로 엇갈려 혼선만
정보사부지 매각사기사건은 중요인물들에 대한 수사가 진행되고 있으나 갈수록 윤곽이 불분명해지는 오리무중으로 빠져들고 있다.
검찰수사는 핵심인 사기자금의 향방과 배후세력의 실체규명에는 본격적으로 접근하지 못한채 관련자들의 진술과 주장에 끌려다니는 인상까지 주는 상태다.
이처럼 수사가 가닥을 못잡고 있는 것은 관련자들의 떠넘기기식 허위진술이 원인으로 설명되고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이 사건을 바라보는 검찰의 시각과 수사의지에도 상당한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다.
검찰은 사건이 표면화된 직후부터 일기 시작한 배후의혹설보다는 단순사기극쪽으로 수사방향을 설정한듯한 인상이다.
그러나 숫자가 진행될수록 단순사기쪽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사실이 드러나 수사진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이에 대해 고위수사간부조차도 『배후세력의 존재를 전제로 하지 않으면 풀 수 없는 의문점이 무수히 많은 것이 사실』이라고 말하고 있다.
검찰은 지금까지의 수사결과 ▲제일생명의 박남규회장과 하영기사장 등 수뇌부가 매입추진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전합참군사연구실 자료과장 김영호씨가 공문서를 위조했고 ▲성무건설회장 정건중씨 일당이 제일생명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였다는 사실 등을 밝혀냈다.
그러나 검찰은 이같은 사실의 체계적인 연관관계를 설명해내지 못하고 있다.
검찰은 우선 제일생명의 부지매입은 윤성식상무가 개인적으로 추진한 것이 아니라 사전에 계획을 알고 있었던 박 회장·하 사장의 묵인하에 이뤄졌다는 결론을 얻었지만 이는 또다른 의문의 실마리가 되고 있을 뿐이다.
부동산 투자분야에서 최고의 정보력을 갖춘 보험회사가 정보사부지 매매를 성사시킬 아무런 근거도 제시하지 못한 정건중씨 일당의 말에 현혹돼 6백60억원을 투자하고 4백73억원을 날린 셈이 되기 때문이다.
검찰은 윤 상무가 땅매입단가를 올려주는 대가로 사기단일당으로부터 거액을 받은 것으로 보고 있으나 이는 박 회장 등으로 하여금 투자를 결심케한 거물급 배후인물의 실체와 비밀흥정내용을 밝혀야 설명되는 부분이다.
특히 하 사장이 『회사허락없이 부지매입을 추진한 윤 상무를 업무상배임혐의로 고발하겠다』고 공언까지 했던 배경도 분명히 밝혀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김영호씨에 대해서는 1월21일 정씨 일당으로부터 사례금 5억원,계약금 76억5천만원 등 81억5천만원을 받고 국방부장관의 고무인이 찍힌 가짜매매계약서를 만들어 주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이 부분에서도 김씨와 정씨일당이 피차 허위계약서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사례금외에 별도로 거액의 계약금을 주고받은 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사기계약서를 체결한 것이 아니라 실체가 있는 진짜 계약서의 용도로 작성됐을 수도 있다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제기된다.
검찰은 이에 대해 김­정씨 일당­제일생명 등 세그룹을 오가며 거래의 연결고리 역할을 한 박삼화(39)·김인수·곽수열(45) 등 공범들의 신병이 확보돼야만 의문이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단계에서도 검찰이 군내 고위인사들과의 친분관계를 공공연히 과시한 김씨의 입을 열게 하고 군내 배후세력의 존재여부를 가리는 것이 의혹해소의 지름길이 될 것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군수사당국의 협조가 있어야 하나 현실적으로 이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검찰이 밝혀낸 정씨 일당의 제일생명을 상대로 한 사기극도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요소가 많다.
제일생명은 국민은행에 예치한 2백30억원은 정씨 일당에게 부지매입의사와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제시한 돈이고 뒤이어 건너간 4백30억원은 견질어음이었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정씨일당이 제일생명측의 「묵인」하에 이중 4백73억원을 빼돌린 사실은 애초에 이 돈이 땅값으로 지불된 것일 수도 있다는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결국 이 모든 의혹은 정씨일당이 챙긴 자금의 행방을 추적,배후관계를 파악해야만 풀릴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9일 은행감독원으로부터 넘겨받은 수표추적결과를 근거로 관련자들의 자금사용처를 추궁하고 있으나 전문사기집단에 의한 치밀한 「돈세탁」과정이라는 변수가 도사리고 있어 결과를 쉽게 낙관하지 못하고 있다.
만일 검찰이 돈의 향방과 배후세력의 존재여부를 가려내지 못하면 이번 사건은 단순사기극으로 막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이 경우 검찰은 국가공권력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라는 최악의 상황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이하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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