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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공연장 순례] 파리 오페라 바스티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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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에서 택시를 타고 '파리 오페라'로 가자고 하면 택시 기사가 반드시 묻게 돼 있다. "가르니에 아니면 바스티유 중 어디로 갈까요?" 1989년부터 파리 국립 오페라 극장이 하나 더 생겼기 때문이다. 샤를 가르니에가 설계한 옛 극장은 '팔레 가르니에'(Palais Garnier), 1989년에 개관한 새 극장은 '오페라 바스티유'(Opera Bastille)라고 부른다.

파리에서 오페라 극장을 새로 짓자는 의견은 오래전부터 나왔다. 1960년대 중반 앙드레 말로가 프랑스 문화부 장관으로 있을 당시 아비뇽 페스티벌의 창설자인 장 빌라르(Jean Vilar)를 비롯해 작곡가 피에르 불레즈, 안무가 모리스 베자르 등이 오페라 극장 신축을 제안했다. 1977년에는 팔레 가르니에가 엄청난 제작비에 비해 재정 자립도가 너무 낮다는 보고서가 발표됐다. 당시 프랑스 재정부 장관 프랑스 블로후 레네(Francois Bloch-Laine)는 "도심에 3000석 규모의 현대식 오페라 극장을 짓자"고 제안했다.

1981년 프랑스 제5공화정 최초로 좌파인 사회당이 대선에서 승리를 거뒀다. 미테랑 정부는 일반 시민들이 값싼 입장료를 내고 오페라 관람을 즐길 수 있는 현대식 극장을 짓는 일에 착수했다. 1982년 3월 9일 대통령령으로 "바스티유 극장에 오페라 극장을 짓는다. 제작비를 절감하면서도 공연회수를 늘릴 수 있다"며 "상징적 집회 장소인 바스티유에 대중을 향해 열린 예술의 장을 만들겠다"고 선언했다.

파리 시가 부담하는 운영 예산은 3배로 늘리고, 정부 지원은 3분의 1로 줄이면서 오페라 극장의 엘리트주의를 타파하는 게 목표였다.

설계 경기에는 757명이 응모했다. 심사위원들 사이에서는 미국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의 작품이 선정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하지만 1983년 11월 막상 두껑을 열어보니 우승자는 이름을 전혀 모르는 신예 건축가였다. 우루과이 태생의 캐나다 건축가 카를로스 오트가 그 주인공이었다.

처음엔 오페라 극장, 콘서트홀, 국립음악원, 악기박물관을 아우르는 대규모 아트센터를 추진했으나 도심에 마땅한 부지가 없어 오페라극장만 따로 짓기로 했다. 콘서트홀, 국립음악원, 악기박물관은 결국 빌레트 공원에 들어선 시테 드라 뮈지크에 자리잡았다.

시트로엥 자동차 공장 부지, 빌레트 공원, 샹페레 광장, 레잘(Les Halles: 도매시장이 있던 자리)을 제치고 바스티유 기차역(뱅센느 역) 부지가 선정됐다. 프랑스 혁명 때 함락된 바스티유 감옥이 있던 자리에는 1859년 기차역이 들어섰다. 1969년 12월 14일 문을 닫고 나서는 줄곧 전시장으로 쓰였다. 오페라를 귀족문화에서 시민문화로 돌려놓으려는 프랑스 좌파 정부는 바스티유라는 역사적 장소를 선호했다.

파리에서 세번째로 큰 건물

1789년 7월 14일 파리의 성난 시민들은 앙시앙 레짐의 상징이던 바스티유 감독 습격해 프랑스 대혁명에 불씨를 당긴다. 바스티유는 원래 샤를 5세때 만들어진 요새였는데 루이 13세때 국사범을 가두는 감옥으로 쓰였다. 프랑스 혁명 당시 당시 7명의 국사범을 가둬두느라 110명의 수비대가 지키고 있었다. 7월 14일은 지금도 프랑스인들이 프랑스 대혁명 기념일로 지키고 있다. 바스티유 광장 한복판에는 높이 52의 '7월의 탑'(Colomme de Juillet)이 우뚝 서있다. 이 탑 밑에는 1830년 7월 혁명 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유해가 묻혀 있으며 청동 기둥에도 이름이 새겨져 있다. 238개의 계단을 올라가 전망대에 오르면 에펠탑, 샹젤리제 거리 등 파리 시내가 한눈에 보인다.

프랑스 혁명 발발 200주년이 되던 1989년 7월 13일. 거대한 배 모양의 오페라 바스티유가 문을 열었다. '혁명 전야'라는 타이틀을 내걸고 개막 갈라 콘서트가 열렸다. 조르주 프레트르가 지휘봉을 잡고 바리톤 루지에로 라이몬디, 소프라노 바버라 헨드릭스, 테레사 베르간사, 테너 플라시도 도밍고 등이 출연했다. 미테랑 대통령과 전세계에서 초청한 지도층 인사와 외교사절이 객석을 가득 메웠다.

첫 오페라는 1990년 3월 17일에 막이 오른 베를리오즈의 '트로이인들'(Les Troyens). 정명훈씨가 지휘봉을 잡았다. 원래 모차르트의'피가로의 결혼'으로 개막 공연을 꾸미려고 했으나 극장장의 갑작스런 사퇴로 지연됐다. 음악감독 다니엘 바렌보임은 개관 6개월을 앞두고 해임됐다. 정명훈씨가 음악총감독에 임명된 것은 1989년 5월 29일. 당시 독일 자르브뤼켄 방송 교향악단의 수석 지휘자로 있었다. 정명훈씨도 1994년 10월 14일 '시몬 보카네그라' 공연이 끝난 후 해임됐다. 부당한 해고에 법적 소송을 제기한 정명훈씨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900만 프랑(약 18억원)의 보상금을 받았다.

연면적 16만㎡,높이 80m(지하 30m)의 규모에 3500명의 관객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오페라 바스티유가 생기기 전 파리의 유일한 오페라극장이었던 팔레 가르니에(1875년 개관)의 입장료는 최고 1500프랑(약 23만원)이었다. 오페라 바스티유는 그것을 절반 이하인 670프랑(약 10만원)으로 깎아내렸다. 오페라 관람을 엄두도 못내던 서민과 젊은층들의 발길이 하나둘 이어졌다.

오페라 바스티유는 루브르 박물관 광장의 피라미드, 라 데팡스의 신개선문, 프랑스 국립 도서관, 빌레트 과학예술공원 등과 함께 20세기말 세계적인 중심 국가로 발돋움하는 프랑스를 상징하는 기념비적인 건축 사업 '그랑 프로제(Grand Projet)'의 대표작이다. 프랑스 국립도서관, 재정부 청사에 이어 파리에서 세번째로 큰 건물이다.

원래 기차역이 있던 자리에 들어선 바스티유 오페라 주변에는 갤러리와 영화관, 공연장들이 생겨났다. 1995년 파트릭 베르제의 설계로 고가 철도를 개조해 만든 '예술의 고가도로(아치형의 단층 상가 건물과 옥상의 산책로)'에는 화가나 조각가등 예술가와 금속.목공예.카페트.보석세공 등 장인들의 아틀리에,컴퓨터.소프트웨어 매장,카페.패션 스토어 등이 속속 입주했다.예술 애호가들의 발걸음이 잦아지면서 바스티유 일대는 복합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했다. 오페라 바스티유는 공연 외에도 청소년과 시민들을 위한 무료 강좌,배우들과의 백스테이지 대화,무용 시범, 각종 전시회 등을 주최하며 문화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귀족 문화의 잔재인 박스석 없애

바스티유 오페라는 설계 공모에만 11개월 동안 1250만프랑이 소요됐다. 건축비는 31억프랑(약 4650억원). 잔향시간은 1.55초. 오페라 가르니에(1.1초), 빈슈타츠오퍼(1.3초)보다 긴 편이다.

객석수(2703석)는 뉴욕 메트로폴리탄(3816석)보다는 작지만 밀라노 스칼라(2289석).빈 슈타츠오퍼(1709석).런던 코벤트가든(2120석)보다 많다. 오페라 가르니에(2131석)보다 570석 더 많은 것은 보다 많은 시민들이 싼 값에 오페라를 볼 수 있도록 한 배려다.

스칼라, 팔레 가르니에, 빈 슈타츠오퍼, 런던 코벤트가든 등 대부분의 오페라극장들이 모델로 삼는 것은 U자형 고리를 3 ̄4개 겹쳐 놓은 모양의 말발굽형 구조. 무대와 1층 객석을 동시에 내려다볼 수 있어 귀족층들이 선호해오던 로열박스 구조다.

하지만 바스티유 오페라는 말발굽형 대신 발코니 구조로 설계됐다. 궁정 오페라와 귀족 사회의 잔재인 박스석을 없애고 모든 관객이 공평하게 무대 정면을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프랑스 사회당 정부의 강력한 주문이 있었기 때문이다.

오페라 공연의 중간 휴식 때는 레스토랑 푸케에서 식사를 즐길 수 있다. 파리에서 유명한 최고급 식당의 분점이지만 바스티유의 정신에 맞게 원래 가격보다 저렴한 메뉴를 내놓고 있다. 극장 지하에는 대형 레코드 숍이 있다.

바스티유 오페라 개관 후 팔레 가르니에는 주로 발레 무대로 사용되고 있다. 물론 모차르트 등 오페라 공연도 열린다.

파리 오페라 오케스트라의 단원은 170명 규모다. 단원들은 자유스럽게 음악원 강의도 나가고 콩쿠르에도 출전할 수 있다. 하지만 매월 25회 이상의 이벤트(리허설 포함)에 참여해야 한다. 합창단에 입단하려면 오페라 아리아 4개를 원어로 불러야 하며 즉석에서 제시한 악보를 보고 부르는 시창 시험에 합격해야 한다. 로시니의 발성 연습곡을 부르는 오디션도 거친다. 합창단이 참가하는 작품은 시즌당 10개. 그중 다섯 작품은 리바이벌이다. 새로 무대에 오르는 다섯 작품은 늦어도 6개월 전부터 연습에 들어간다. 바그너의 '로엔그린'은 2년전부터 연습을 시작한다. 합창 연습실은 '살 베를리오즈' '살 비제'등 7층에 두 개 있다. 합창단 2시간짜리 리허설을 매일 두번씩 하고 저녁에는 무대에 선다.

바스티유 오페라에는 무대 크기만한 공간이 9개나 된다. '그랑드 살'에서 공연 중이더라도 무대 오른쪽에 있는 '살 구노'에서는 다른 작품의 리허설을 진행할 수 있다. 완벽한 방음장치 덕분이다. 550석짜리 암피시어터에서는 '그랑드 살'의 이벤트와 관련된 프리 토크,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 제작 발표회 등이 열린다. 280석짜리 스튜디오 시어터는 '아틀리에 리릭' 소속의 젊은 성악가들의 발표 무대다.

◆공식 명칭: L'Opera National de Paris (Opera Bastille)

◆객석수: Grande Salle 2723석, Salle Gounod 500~1000석, Amphitheatre 550석, Studio 237석

◆홈페이지: www.operadeparis.fr

◆개관: 1989년 7월 13일(바스티유 함락 200주년)

◆건축가: 카를로스 오트(Carlos Ott, 캐나다)

◆음향 컨설팅: 뮐러 BBM

◆부대시설: 레스토랑 Fouquet's

◆상주단체: 파리 국립 오페라, 파리 국립 오페라 오케스트라.합창단

◆서점: 매표소 옆. 월~토 오전 11시~오후 1시, 오후 2시~6시

◆매표소: +33-(0)8-9289-9090. 월~금 오전 9시~오후 6시, 토 오전 9시~오후 1시

◆시즌: 9월부터 이듬해 7월 15일까지

◆교통: Metro Bastille(1, 5, 8호선), RER Gare de Lyon(A선)

◆주소: 120 rue de Lyon 75012, Paris, FRANCE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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