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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년 정치인생 접고 엘리제궁 떠나는 시라크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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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호 10면

이라크 파병 문제로 영ㆍ미와 프랑스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던 2002년 11월. 70회 생일을 맞은 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은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의 만년필 선물에 화를 벌컥 냈다고 한다. ‘이제 늙었으니 이 만년필로 회고록이나 쓰란 말이냐’가 이유로 알려진다. 이제 시라크 입장에선 그 만년필이 정말 필요한 시점을 맞았다.

16일 자정 12년 권좌의 시라크가 엘리제궁과 작별을 고한다. 1995년 대통령 당선, 2002년 재선의 영광을 뒤로하고 45년에 걸친 정치 인생에 종지부를 찍는다. 그만큼 화려한 정치경력을 자랑하는 이도 드물다. 35세에 국회의원 당선, 74년엔 42세의 젊은 나이로 총리가 됐고, 77년부터 95년까지 18년 동안 파리 시장을 지냈다. 95년부터 이제까지 대통령으로 재직했으니 그보다 관운 좋은 이를 찾기가 힘들 정도다.

그러나 그의 공과(功過)에 대해선 논란이 분분하다. 가장 간단하게 내치(內治)는 마이너스, 외교는 플러스 성적이란 평가가 많다. 8.5%에 달하는 고실업이 보여주듯 경제 침체가 시라크 내치의 최대 감점 요인이다. 2005년 가을 파리 근교에서 3주간 계속된 이민자 폭동도 그 연장선에 있다. 또 그해 유럽헌법 국민투표에서 프랑스 국민들이 반대표를 던져 부결시킨 것은 사실상 그에게 정치적 사망 선고를 내린 것과 같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나마 프랑스의 월드컵축구대회 우승이 위안거리라고 한다.

그러나 외교에서는 ‘프랑스의 자존심’이란 긍정적 평가를 받는다. 이라크전쟁 발발 때 미국의 독주에 맞서는 등 미국의 일방주의를 견제하려 한 그의 ‘시라크 외교’가 60년대 샤를 드골을 떠올리게 한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 유럽인들의 상당수가 이라크전쟁에 반대하는 것으로 드러나면서 그는 ‘유럽 시민’을 대변했다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그는 지난 3월 세 번째 대통령 임기에 도전하지 않는 것으로 프랑스에 봉사하겠다고 말했다. 그 약속을 지키고 떠나는 시라크의 뒷모습이 결코 흉하진 않을 것 같다.

▶지난 주
10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 사임 발표=1997년 5월 2일 총리에 취임한 블레어가 집권 10년 만에 다음달 27일 사임하겠다고 공식 발표함. 2년 정도 임기가 남아 있어 중도 하차하는 셈.
10일 터키 의회 헌법 개정안 통과=대통령 선출을 직선제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킴. 정의개발당이 발의한 개정안은 투표에서 찬성 376, 반대 1의 압도적 지지를 받음.

▶이번 주
14일 유럽연합(EU) 국방장관, 외무장관 베를린 회의
14일 필리핀 중간선거=상원 절반과 하원 전체, 그리고 수천 명에 달하는 시장ㆍ부시장 선거
14일 야네즈 얀샤 슬로베니아 총리 폴란드 방문
16일 아메트 네지데트 세제르 터키 대통령 임기 만료
16~17일 아프리카개발은행 연례회의 상하이 개최
17일 도미니크 드 빌팽 프랑스 총리 사퇴와 새 총리 지명
18일 유럽연합-러시아 정상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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