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환경 먹칠한 「신정」사건/양재찬경제부기자(취재일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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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신정제지 부도와 관련한 증권감독원의 무더기 고발은 현재 우리증시가 처해있는 환경이 얼마나 오염돼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기업을 온전하게 운영하고 공개시켜 국민의 사랑속에 키워야 할 기업주는 공개직후부터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기에 바빴다. 그의 비도덕성은 지난해 자기 기업의 결산에서 극치를 이뤘다. 자본금(92억원)보다 많은 1백52억원에 이르는 금액을 거짓으로 부풀려 적자기업을 흑자로 둔갑시켰다. 이런 거짓장부 꾸미기는 결국 공개돼서는 안될 기업이 버젓이 상장됐음을 뜻한다.
그러나 이런 과정이 증권감독원의 첫 현장감리인 실질심사에서 전혀 밝혀지지 못했다. 이번 91년 결산에 대한 조사과정에선 가짜 영수증만으로도 거짓결산을 쉽게 밝혀냈다는데,작년의 공개전 실질심사에선 왜 밝혀내지 못했는지를 감독당국은 심각하게 짚어보야야 한다.
문제는 기업의 회계장부조작행위다.
신정제지 사건이 뚜렷이 보여주듯 공인회계사 묵인하에 엉터리로 만들어진 재무제표상의 당기순이익 등을 보고서 기업내용을 평가해 투자하는 일반투자자들로선 분통이 터질 노릇이다. 이번 사건이 주는 또다른 충격은 상장기업의 내용을 알만한 위치에 있는 기관이나 사람들이 총동원되다시피해,이 기업이 곧 쓰러진다는 내용을 알면서도 문제를 막기는 커녕 서로 자기 이익을 챙기기에 바빴다는 점이다. 주거래은행,회사설립때부터 지분을 투자한 창업투자회사,엄정하게 기업의 재무상태를 감사해야 할 공인회계사 누구하나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았다.
이 와중에 심지어 회사채 지급보증을 섰던 대신증권측은 채권확보라는 명분을 내세워 주거래은행인 전북은행에서 내부자거래로 팔아치운 주식매각잔금을 빼돌렸다가 말썽이 생기자 되돌려주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그렇지않아도 질척거리는 증시상황에서 정보가 부족한 일반투자자들이 이같은 불공정거래가 판치는 증시에 더욱 염증을 느낄까 걱정된다.
증시의 신뢰도에 먹칠을 한 이번 사건이 터진 후 증권감독원은 곧바로 기업공개제도를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그러나 오염된 증시의 환경개선이 당국의 감독강화 선언만으로 이뤄질 수는 없다. 「지키는 사람 열이 도둑 하나를 못당한다」란 말이 있듯이 우리 증시의 오염은 기업·증권사·회계사 등 증권계의 모든 종사자가 정화시켜 나가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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