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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공연장 순례] 로마 오디토리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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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로마에는 변변한 콘서트홀 하나 없었다. 산타 체칠리아 아카데미 소속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이 1908년 창단 이후 줄곧 무대로 사용해오던 '테아트로 아우구스테오'가 1936년 문을 닫으면서 사정은 더욱 악화됐다. 무솔리니가 군국주의 색채가 짙은 건물만 남기고 모두 파괴할 때 함께 사라진 것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는 물론이고 로마를 찾는 외국 교향악단들도 비아 델라 콘실리아지오네에 있는 피오 12세 강당을 무대로 사용해야 했다. 이곳은 로마시가 바티칸으로부터 매입한 대회의실로 개.보수 공사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음향이 나빠 연주자와 청중의 원성이 자자했다. 또 아카데미아 필아르모니카는 테아트로 올림피코에서 연주해왔다.

로마 올림픽 공원에 들어선 아트센터

로마시가 음악당 신축계획을 발표한 것은 1993년의 일이다. 1960년 로마 올림픽 경기장이 들어선 올림픽 공원 내에 부지를 마련했다. 티베르 강둑과 파리올리 언덕 사이의 인근 평원에는 올림픽 선수촌이 자리잡고 있다. 이듬해 설계 공모에서 이탈리아 제노바 태생의 건축가 렌조 피아노가 선정됐고 10년 만에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유럽 최대 규모의 음악센터로 건축비는 모두 1억4천만 유로(약 1천6백38억원).

2002년 12월 21일 오전 11시30분 정명훈씨가 지휘하는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이탈리아 국가와 함께 '오디토리엄-파르코 델라 무지카'가 문을 열었다. 카를로 아젤리오 치암피 이탈리아 대통령, 월터 벨트로니 로마 시장, 로마노 프로디 이탈리아 전 수상 등이 참석한 가운데 로시니의 '윌리엄 텔 서곡', 헨델의 '할렐루야', 베토벤'합창 환상곡'(피아노 협연 마우리치오 폴리니), 스트라빈스키'봄의 제전'등이 연주됐다. 객석에는 작곡가 한스 베르너 헨체,영화 음악가 엔니오 모리코네, 영국 출신의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 이탈리아 출신의 여배우 스테파니아 산드렐리 등의 모습도 눈에 띄었다. 음악회는 이날 로마 정도(定都) 2275주년을 맞아 시내 전역에서 펼쳐진 축제의 하이라이트였다.

개관과 함께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합창단은 이곳으로 주무대를 옮겼다. 대편성 오케스트라와 합창단을 위한 아레나 형(또는 포도밭 스타일)의 산타 체칠리아 홀(2756석)을 비롯해 체임버 오케스트라.실험음악.멀티미디어.실내악.발레 공연을 위한 직사각형의 시노폴리 홀(1273석), 독주회를 위한 페트라시 홀(700석)등 3개의 공연장이 독립 건물로 중앙광장을 중심으로 반원형을 그리고 있다. 주제페 시노폴리(Giuseppe Sinopoli, 1946~2001)는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의 사령탑을 거쳐간 지휘자, 고프레도 페트라시(Goffredo Petrassi, 1904~2003)는 이탈리아 출신 작곡가다. 3개의 공연장이 방음 등의 문제로 구조적으로 분리돼 있지만 로비로는 연결된다. 딱정벌레, 게, 투구 풍뎅이, 거북이, 곤충, 컴퓨터 마우스 등 다양한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광장에는 팝.재즈.월드뮤직 공연을 위한 3천석짜리 반원형 야외음악당이 방문객을 맞는다. 야외음악당에는 산타 체칠리아 협회의 총감독을 지낸 작곡가 루치아노 베리오(Luciano Berio, 1925~2003)의 이름을 붙였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원형극장을 떠올리게 하는 야외무대다. 겨울철에는 인공 스케이트장을 마련해 시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의 주무대

하루 종일 시민에게 만남의 장소로 개방되는 메인 홀 로비는 악기박물관의 입구와도 연결된다. 로비에는 토스카나 출신의 작가 마우리치오 난누치가 만든 20개의 네온 설치 작품이 있다.

공연 장르에 따라 무대의 위치가 이동하는 가변형 무대를 채택한 시노폴리 홀은 비디오.오디오 레코딩을 위한 첨단 시설을 갖췄다. 광장 우측의 부속건물에는 레스토랑과 커피숍.전시장.음악도서관 등이 들어서있다. 공연장과 공연장을 잇는 하늘 공원은 어린이를 위한 놀이터다. 평일 오전 11시부터 오후 8시까지 개방된다.

파르코의 운영은 신설된 로마 음악재단(www.musicaperroma.it)이 맡고 있다. 로마시는 이 재단에 개관 후 99년간의 운영권을 이양했다. 상공회의소는 자본금으로 2500만 유로를 내놓았다.

파르코는 문자 그대로 녹지와 광장으로 둘러싸인 '음악공원'이다. 건물이 들어선 대지만 4만200㎡. 나머지 광장.녹지만도 4만㎡이나 되는 엄청난 규모다. 공사가 늦어진 것은 1995년 9월 26일 시작된 지하 주차장 공사 도중 고대 로마의 유적이 발굴됐기 때문이다. BC 500 ̄310년 로마의 장교와 지주들이 살던 주택가였는데 AD 150년께 거의 파괴되고 말았다. 메인홀과 중극장 사이에는 이곳에서 발굴된 고대 로마 유적을 복원 전시해 놓았다. BC 6세기의 건물로 추정되는 마을과 올리브 압착 유적이 발굴됐다. 이 과정에서 1997년 건설회사는 공사기간 연장을 요구했고 공사비도 50% 늘어났다. 시의회와의 법적 분쟁으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다.

로마 시내 곳곳에 안내 표지판

"오디토리엄은 단순한 공연장이 아니다. 3개 홀과 야외공연장, 거대한 리허설룸, 레코딩 시설을 갖춘 완벽한 음악도시다. 문화 공장이다". 건축가 렌조 피아노는 오디토리엄-파르코 델라 무지카를 완공한 뒤 '건축가에게 콘서트홀을 짓는 것만큼 흥분된 경험은 없다'며 소감을 밝혔다.

로마는 이탈리아 정부 각 부서의 청사가 시내 곳곳에 뿔뿔이 흩어져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도시 전체가 온통 문화재나 다름 없어서 건물을 헐고 종합청사를 짓는 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도심에 대규모 아트센터를 새로 짓는 것은 더욱 불가능한 일이다. 그래서 북쪽 끝자락에 자리잡아 교통도 불편한 올림픽 공원에 짓게 된 것이다. 하지만 로마 시내 에는 도로마다 'Auditorium'으로 가는 길을 알려주는 표지판을 볼 수 있다. 시내 어느 곳에서도 표지판만 따라가면 오디토리움에 도착한다. 공연 전 로마 중앙역에서 출발하는 특별 버스 노선도 마련했다. 공연장의 생명은 접근성에 있기 때문이다.

◆공식 명칭: Auditorium Parco della Musica

◆홈페이지: www.auditorium.com

◆건축가: 렌조 피아노 Renzo Piano(이탈리아)

◆개관: 2002년 12월 19일

◆객석수: Sala Santa Cecilia 2756석, Sala Sinopoli 1273석, Sala Petrassi 700석, 시어터 스튜디오(350석), Luciano Berio Cavea(야외극장) 3000석

◆부대 시설: 하늘 공원, 연극 스튜디오, 레스토랑 ReD, 전시장 'Auditorium Arte', 칵테일 바 BArt, 음악도서관, 악기박물관, 선사시대 유적 전시관, 서점

◆운영 주체: Musica per Roma 재단

◆상주 단체: 로마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주소: Viale Pietro de Coubertin 30 - 00196 Roma

◆교통: 중앙역(Termini)에서 오후 5시부터 15분 간격으로 특별 버스 M 왕복 운행, 지하철 A 라인 Flamino역 하차 후 2번 전차로 환승, Ferrovia Roma-Nord 기차를 타고 Piazza Euclide에서 하차

이장직 음악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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