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안마셨는데 음주운전 적발”/헌법소원내 누명 벗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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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죄있지만 용서」 기소유예 불복/재수사 결정받아 집념의 승리/30대 시민 “진실은 밝혀야”
술자리에 있기는 했으나 결코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시민이 음주운전 단속에서 0.05%의 혈중알콜농도가 나와 검찰로부터 「죄는 있지만 용서한다」는 기소유예처분을 받자 헌법재판소에까지 소원을 내 9개월만에 재수사 결정을 받아냈다.
면허정지처분도 아닌데다 벌금 한푼 안내는 처분을 그냥 참고 넘어갈 수 있는데도 「하늘이 무너져도 진실을 세운다」는 소신으로 시민정신의 승리를 기록한 「별난 시민」은 심효식씨(34·세무사).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26일 심씨의 도로교통법위반 기소유예처분 취소청구 헌법소원을 받아들여 『사건을 재수사하라』고 결정했다.
심씨는 지난해 9월27일 오후 서울 가락동 한식집에서 친구 3명과 저녁을 먹고 헤어져 집으로 돌아가다 오후 10시10분쯤 서울 이화동 로터리부근에서 신호위반으로 경찰에 적발됐다. 신호위반 사실을 시인한 심씨에게 교통경관은 음주측정을 요구했고 심씨는 「단 한방울도 술을 마시지 않은 까닭」에 자신있게 음주측정에 응했다. 결과는 혈중알콜농도 0.05%.
심씨는 그럴리가 없다며 음주측정기 대롱이나 측정기를 바꿔 재측정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단속경관은 심씨가 사용한 음주측정기 대롱을 집어던지고 『경찰서로 가자』는 한마디로 이를 묵살했다.
한시간 남짓 음주운전을 시인하는 서명을 거부한채 승강이를 벌인 심씨는 인근 N병원을 찾아 닫힌 문을 두드린 끝에 채혈한뒤 이를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분석의뢰해줄 것을 경찰에 요구하며 진정서까지 제출했다.
그러나 검찰은 한달뒤인 10월31일 국과수의 분석결과를 심씨에게 알려주지도 않은채 경찰 기록을 토대로 기소유예처분을 내렸고 심씨는 3백만원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헌법소원을 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혈액분석결과 알콜이 검출되지 않았고 청구인이 음주사실을 전면부인하고 있는데도 수사검사는 쌍방 증거의 신빙성에 관해 최소한의 조사도 하지 않고 피의사실을 인정했다』며 『이는 자의적인 검찰권 행사로 청구인이 공정하고 성실한 수사를 받을 수 있는 평등권을 침해,그 결과 정식 재판에서 무죄판결을 받을길마저 막은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혔다.<권영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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