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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칸셋방 81세 할아버지/국교에 5백만원 장학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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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묘자리 사기위해 푼푼이 모은 돈”/좋은 일 해놓고 편안히 잠들겠다”/10년간 교통정리 해주던 학교에 기탁
단칸 셋방에 사는 80대 할아버지가 자신의 장례비용으로 푼푼이 모아온 5백만원을 자신이 10년동안 등·하교길 교통안전봉사를 해오던 국민학교에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화제의 주인공은 서울 대치2동 은마아파트 상가에서 담배가게를 하는 임봉학씨(81·서울 대치3동 986).
임씨는 19일 오후 대치2동 대곡국민학교 교장실에서 자신의 전재산이나 다름없는 5백만원을 교장 이영미씨(63)에게 전달했다. 학교측은 기탁받은 돈으로 임씨의 이름을 딴 「봉학장학회」를 설립,매년 가정형편이 어려운 졸업생들에게 중학교 입학금을 지원하기로 했다.
이날 전달식에서는 또 동양화가인 교장 이씨가 장학금에 대한 보답의 표시로 자신이 그린 한폭짜리 「푸른 소나무」그림을 임씨에게 선물했다. 이 돈은 임씨가 80년부터 은마아파트 노인회에서 사무장으로 일하면서 매월 수고비로 받은 몇만원씩을 차곡차곡 모은 것.
『죽은 뒤 편히 잠들 묘자리를 사기 위해 돈을 모아왔었다』는 임씨는 『그러나 생전에 좋은 일을 하고 죽는 것이 진정 편안히 잠드는 길이라는 생각에 기탁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임씨가 굳이 대곡국교에 돈을 맡긴 이유는 이 학교앞 건널목에서 82년부터 10년동안 교통정리를 해오면서 아이들에게 남다른 애정을 갖게 됐기 때문.
임씨는 등교시간인 오전 7시부터 9시30분까지 10년을 하루도 빠짐없이 횡단보도를 지켜와 이 학교 학생들이면 모두 알고있는 「교통할아버지」. 그동안 교통봉사활동에 대한 공로로 서울시·경찰서 등으로부터 10여차례에 걸쳐 감사패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교통정리도중 자가용에 치여 손목이 부러진뒤 목 등에 중풍증세까지 겹치면서 거동이 불편,1년여동안 거리에 나가지 못하고 있다.
임씨는 20여년동안 다녀온 비누제조회사를 정년퇴임하고 4남1녀의 자녀를 모두 출가시킨뒤 80년부터 부인 유낙균씨(75)와 1천만원짜리 전세방에 살며 담배가게 수입으로 근근이 생활한다.
교장 이씨는 『임씨의 5백만원은 강남부유층의 5억,50억보다 훨씬 값진 돈』이라며 학생들을 올바로 키우는 「밀알」이 될 것이라고 했다.<이규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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