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용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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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나는 탤런트를 하고싶어요. 탤런트가 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으니까요.』 『나는 돈을 벌기 위해 신문배달을 해볼까 생각했지만 집을 기억하지 못할 것 같아 포기했어요. 그렇지만 뭔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었으면 좋겠어요.』
수연(12·서울 J국민학교6)과 정희(12)의 말에 재호(12)는 『탤런트도 생각보다 드는 돈이 더 많고 신문배달이나 아르바이트를 해서는 필요한 돈을 벌 수 없다』며 『그보다는 엄마·아빠에게 아부해서 돈을 얻어내는 것이 훨씬 쉬운 길』이라고 반박했다.
지난 4일 서울 J국민학교에서 만났던 아이들은 『쓰고싶은 곳은 많은데 돈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다른 애들이 가지고있는 옷·신발·머리핀도 갖고싶고 예쁜 팬시학용품도 사고싶어요. 요즘은 별 희귀하고 예쁜 것들이 많아 다 가지고싶은데, 너무 비싸요. 용돈은 먹고싶은 것만 조금 사먹으면 떨어져요.』
수연의 말에 다른 여자아이들도 동감이라고 입을 모았다. 『전자오락에 돈이 많이 들어요. 또 집까지 가는 길에 너무 먹고싶은 것들을 많이 팔아 그냥 지나치기 힘들어요. 조립식장난감도 많이 사고싶고….』
성수(12)는 여자아이들과는 조금 다른 곳에 돈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돈을 많이 가지고 다녀서 내가 돈이 없으면 기가 죽는 것 같아요.』『돈 많은 아이를 보면 그 아이가 되고싶어요.』 『내 친구는 엄마가 아는 가게에서 먹고싶은 게 있으면 외상으로 사먹으라고 했대요. 얼마 전에 그 친구가 외상으로 먹을 것을 사주었는데 정말 부러웠어요.』
아이들은 자신들이 쓰는 돈을 대부분 부모가 주는 용돈으로 충당한다. 용돈은 주급·월급 등 일정하게 받는 경우와 필요할 때마다 타서 쓰는 경우 등 다양하다.
최근 ㈜재능교육이 서울·경기지역 국민학교3∼6학년 어린이 3백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어린이 용돈조사에 따르면 교통비·학용품비를 제외하고 월 1만원이하가 40.3%로 가장 많았으며, 필요할 때마다 타서 쓰는 어린이도 38%로 나타났다. 또 어린이보호회 대전지부가 대전시내 국민학교어린이 5백9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어린이 용돈실태조사에 따르면 한 달에 한번 받는 경우가 31.2%였고, 필요할 때마다 23.5%, 1주일에 한번이 18.9%로 나왔으며 정기적으로 용돈을 받는 경우 금액은 평균 1만원정도인 것으로 나타났다.
『용돈은 한달에 1만5천원씩 받아요. 준비물을 사고 학교에서 하는 저축을 하고 먹고싶은 것을 사먹어요.』
재은(11·서울 B국민학교5)은 이러한 정기적인 용돈 말고도 학교준비물 등을 핑계삼아 돈을 더 얻어낼 수 있다고 말한다.
『매달 용돈을 받으면 용돈기입장을 작성하라고 해 귀찮아서 아예 받지 않아요. 준비물을 살 때 필요한 돈보다 더 많이 달라고 해서 쓰거나 어른들이 동전은 잘 흘리고 다니기 때문에 집에 떨어져 있는 동전을 모아서 오락실에 가거나 군것질을 하는 경우가 많아요.』
성규(12·서울 E국민학교6)는 부모들이 학용품이나 학교준비물을 사야한다고 하면 돈을 충분히 주기 때문에 굳이 정기적인 용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생일·크리스마스 같은 날만 되면 학용품을 선물로 주기 때문에 학용품은 너무 많아요. 전 아마 지우개가 20개도 넘을 거예요. 작년 생일선물로 받은 연필은 아직 뜯어보지도 않았어요. 이사가면서 옛날에 받은 필통과 공책을 한 상자는 버렸을 거예요. 그래도 아직 여기저기 뒤져보면 학용품이 많이 나와요. 덕분에 학용품 산다고 타낸 돈은 다른데 쓸 수 있죠.』
아이들은 학교준비물이야말로 부모에게서 돈을 타낼 수 있는 가장 확실한 핑계거리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우리 나라 국민학교에서는 색종이·찰흙·비닐주머니·바둑알·톱밥 등 준비물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부모들도 이러한 학교준비물에 일일이 신경쓰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아이들은 돈을 잃어버린 경험을 누구나 한번쯤은 했다고 말한다. 잃어버린 장소는 오락실·공중전화박스·길거리·교실 안 등 대개는 그냥 주머니에 넣고 다니다가 흘린 경우가 많고 도난 당한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돈을 잃어버렸을 때 돈을 찾으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도 요즘아이들의 특징.
서울 D국민학교5학년 담임인 김 모 교사(38)의 경험담 하나.
『얼마 전 우리 반에서 5만원이 없어진 도난사건이 났어요. 돈을 잃어버린 아이에게 무엇을 할 돈이었느냐고 묻자 그냥 용돈이라는 거예요. 그러면서 「돈을 훔쳐간 것은 누구일 것」이라고 반 아이 하나를 지목하더니 「제가 돈이 아까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남의 것을 훔치는 것은 잘못이기 때문에 그 아이 버릇을 고쳐야한다」고 말하더군요. 그 많은 돈을 주는 부모나 그것이 아깝지 않다고 말하는 아이를 보며 정말 기가 막혔습니다.』
김 교사는 요즘아이들은 이렇게 필요이상의 돈을 가지고 다니며 낭비를 일삼아 큰일이라며 게다가 지갑에 돈을 넣고 다닌다든가 하는 보관을 위한 기본적인 가정교육조차 제대로 돼있지 않다고 말했다.
이용숙 박사(한국교육개발원 책임연구원)는 『아이들에게 금전교육을 시킬 때는 부모·교사 등 어른들과 주위환경이 같은 분위기여야 한다』며 『색종이 한 장을 쓰기 위해 한 권을 사야하는 우리 교육환경과 별생각 없이 용돈을 주는 부모들의 태도가 어린이의 금전교육을 어렵게 한다』고 말한다. <양선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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