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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시민단체 '봐주기 지원' 안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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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행정자치부는 5월 1일 최종 선정된 140개 시민단체의 155개 사업에 올해 사업비 49억원을 할당한다는 내용의 '2007년도 비영리민간단체 지원사업'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전체 사업비 100억원 중 나머지 50억원은 지자체를 통해 지방의 민간단체 지원 사업에 추가 투입될 예정이고, 1억원은 평가 비용이다.

발표 직후 일부 언론은 선정된 단체 중에 '평택범대위'와 'FTA 범국본'에서 주도한 폭력시위에 가담한 단체들이 포함된 점을 문제 삼았다. 지난 연말 국회가 예산심의 과정에서 부대의견으로 제시한 '불법폭력 시위에 참여한 전력이 있는 단체의 지원 제한' 조항에 위배된다는 것이 이유다.

사실 정부는 국회보다 앞선 시점인 지난해 11월 24일 한.미 FTA 저지 집회 주최 측을 겨냥한 '폭력시위엄단' 대국민담화를 통해 불법.폭력 집회를 원천적으로 막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 이어 지자체들에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를 정부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제외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당시 시민단체들은 "반대 목소리 잠재우기"라고 반발했고, 한 신문은 정부와 의견을 달리하는 쟁점과 관련된 집회나 시위가 대부분 불법.폭력으로 번진다는 점을 들어 정부가 '보조금'을 미끼로 시민단체의 집회 및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있다고 비판했었다.

이번 언론의 지적에 대해 행자부는 우선 시민단체의 지원 여부는 '특정단체의 성향이나 주장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닐뿐더러 선정도 '공익사업선정위원회'의 권한이기 때문에 행자부는 사실상 선정 과정에 개입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또 최종 선정에 앞서 '특정단체가 불법폭력시위를 주최해 그 단체 구성원이 구속된 경우에 한해 폭력시위에 참여한 단체로 판단한다'는 경찰청의 판단 기준을 적용한 결과 문제가 없었다는 해명서를 내고 슬쩍 뒤로 빠졌다.

여기서 우리는 지원 사업의 선정 주체인 '공익사업선정위원회'의 12인 시민단체 추천 위원들(총 15인, 3인은 국회 추천)이 비영리 부문이라는 응집력이 강한 '업계'의 일원이라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된다. 그 점에서 평택범대위와 FTA 범국본의 '폭력' 연대가 과제 선정과정에서 쉽게 '봐주기' 연대로 전환됐을 가능성을 함께 연계해 볼 수 있다. 우리 시민사회의 '연대' 지상주의의 한 단면으로써 충분히 가능한 시나리오가 아닌가.

'2006 한국민간단체총람'에 따르면 2006년 현재 활동 중인 시민단체 수는 2만3000개로 중앙행정기관과 시.도 관할부서에 등록을 마친 단체는 6490개다. 바로 이 6490개 등록단체만이 지원자격을 갖는다. 시.도 지역사업은 해당 시.도별로 별도 공고를 하기 때문에 이번 49억원 지원사업은 서울 지역에 등록된 788개 단체만 해당된다. 올해의 경우 전체의 34%에 해당하는 269개 단체만이 지원했다. 매년 비슷한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을 볼 때 사업의 존치 명분이 수그러드는 것도 사실이다.

참여연대나 경실련 같은 '메이저 리그' 시민단체는 단체의 자율성 침해를 우려해 정부의 지원금을 아예 사절한다. 하지만 비영리 부문의 '마이너 리그'에 속하는 영세한 단체에 '민간단체 지원사업'은 거의 생명줄이나 다름없다. 그도 그럴 것이 최소 1000만원을 보장하는 프로젝트 한 건은 '미니' 단체의 연간 총수입에서 많게는 70%, 적게는 30%의 비중을 차지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사업비를 단체 운영비로 전용하는 편법이 난무하고, 단체의 성격과 전혀 맞지 않는 사업계획서나 미흡한 수준의 보고서가 작성된다. 하지만 우리의 온정주의 풍토 덕분에 대체로 그냥 넘어간다.

해마다 100억원씩이나 되는 우리 시민들의 혈세가 일부 시민단체들의 편의를 위해 헛되이 낭비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냉철하게 검토할 시점이다.

서유경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