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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도 "첨단기술시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1면

고고학 하면 어딘가 모르게 고리타분하고 예스런 냄새가 나는 학문으로 인식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요즘엔 이 분야에도 첨단과학기술인 분자생물학이 도입돼 고고학의 수수께끼를 규명하는데 톡톡히 한몫을 하고있다.
종래 고고학분야는 주로 발굴된 고대인류의 골격을 꿰어 맞추거나 그들이 사용했던 연장, 벽 등에 남긴 그림 등의 흔적을 바탕으로 그들의 존재를 규명하는 것이 고작이었으나 요즘에는 규명의 기본출발점부터가 판이하게 다른 것이다.
예컨대 석기시대의 각종 돌연장 또는 바위에 새긴 예술작품에 묻은 혈액이나 화석 또는 미이라 조직의 단백질성분 등을 수집, 이를 분석함으로써 당시의 인류와 동물들의 존재규명 및 활동상을 확인한다는 것이다.
분자고고학이라는 그럴듯한 이름까지 붙여진 이 분야의 권위자 캔버라소재 호주국립대학의 토머스 로이 교수(고고학)는 『이 같은 혈흔이나 단백질을 실마리로 현대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이 유전인자면에서 어떤 차이와 유사점이 있으며 얼마만한 진화과정과 이동을 했는가, 움직임을 보였는가를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분야가 태동된 것은 15년 전, 당시 화석단백질 연구에 관심을 갖고있던 UC샌프란시스코대 핵의학 전문가인 제럴드 로웬스타인 박사가 고대인의 뼈·치아 등의 재료만으로는 고대인류간의 상관관계를 도출해내는데 한계가 있음을 절감하고부터다.
로웬스타인 박사는 관련 있는 고대생물종간의 분자생물학적 연구를 목표로 미 국립과학재단(NSF)에 연구비 지급을 신청했으나 화석단백질은 존재할 수 없다는 당시의 통념 때문에 거절당했다.
그런 상황아래에서도 로웬스타인 박사는 이 분야 연구를 계속 확립시킨바 있으며 그 덕분에 관련학계는 당연치 화석단백질의 존재를 인정하게 됐다.
미 펜실베이니아주 머시허스트대 데이비드 하일랜드 교수는 『산성토양에 묻힌 뼈가 오래가지 않아 소멸돼버리는 등으로 인해 규명에 어려움을 주지만 분자고고학 연구에 쓰이는 생화학물질은 영구적으로 남게돼 최종적인 규명재료가 된다』고 우수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이 분야도 다른 분자생물학분야와 마찬가지로 진행이 간단치 않다. 화석에 함유된 생화학물질들은 극히 미량이 남아있기 때문에 동물 고답적인 고고학자들이 상상도 못할 만큼 고도의 미세한 채취 및 분석기법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 기법 중에는 세포 내에서 유전자정보를 담고있는 DNA(디옥시리보핵산) 추출, 이를 통한 분석작업도 포함된다.
그 중에서도 가장 고도의 기법은 동물면역체계의 예민성을 이용한 물질규명 기법이다.
인류·동물은 체내에 들어온 다른 물질을 중화시키기 위해 항체를 형성하는데 이 물질로 또 다른 단백질의 정체를 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인간혈액의 항체를 이용해 석기연장에 묻어있는 혈흔을 채집, 당시 인류의 종족특성을 파악할 수 있으며 사슴혈액의 항체를 이용해 당시 사슴종의 분포와 진화과정을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분자고고학자들은 마른 혈흔뿐 아니라 뼈 등의 인체구성 단백질·혈청단백질·알부민·콜라겐 등 여러 가지 체내물질들도 중요한 단서로 이용하고 있다.
1912년 영국 서섹스 지방에서 발견돼 고생물학자들이 유인원인 필트다운인 것으로 인정했으나 나중에 가짜로 판명 난 두개골의 경우도 결국은 로웬스타인 박사가 뼈 단백질을 분석한 결과 오랑우탄의 것으로 판정함으로써 해결됐다.
이라크 북서부의 바르다 발카에서 발굴돼 인류용품 중 최고의 것으로 인정된 구석기시대 부싯돌도 돌에 묻은 혈흔을 로이 박사가 분석, 20만년 전 것으로 판정하고 이를 로웬스타인 박사가 확인함으로써 정설로 굳혀지게 됐다. <윤재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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