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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판 고려장(분수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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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부모은중경』은 부모의 은혜가 한량없이 크고 깊음을 깨닫게 하고,그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가르친 불교 경전이다. 가령 어머니의 은혜를 일컬어 「어머니가 자식을 낳을 때는 3말8되의 응혈을 흘리고 키울때는 8섬4말의 혈유를 먹인다」고 했다. 이같은 은덕을 생각하면 자식은 아버지를 왼쪽 어깨에,어머니를 오른쪽 어깨에 업고 수미산을 백천번 돌더라도 그 은혜를 다 갚을 수 없다고 일깨웠다. 부모에 대한 자식의 효도는 일찍부터 모든 도덕규범의 기초가 되어왔다. 그래서 전해 내려오는 설화 가운데는 효행과 관련된 것이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는 겨울에 잉어를 구해 병든 어머니를 봉양했다는 『효자와 잉어설화』,홀어머니를 모시기 위해 스스로를 쌀 몇섬에 종으로 팔았다는 『효녀지은설화』가 있다. 널리 알려져 있는 『심청전』도 효사상이 바탕을 이룬 것이다.
물질만능의 풍조가 팽배하고 가족구조가 옛날과는 사뭇 달라진 현대사회에서는 효의 개념도 어쩔 수 없이 변모하게 마련이다. 그렇다고 해서 효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관마저 흔들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세상 인심이 아무리 각박해졌다 하더라도 효행은 면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전신마비의 시어머니를 10여년째 수발하고 있는 며느리의 얘기,신부전증으로 사경을 헤매는 아버지에게 콩팥을 이식한 여고생의 얘기같은 것들이 가슴을 뭉클하게 하기도 한다.
이런 사례들이 차가운 현실을 잠시나마 훈훈하게 해주고는 있지만 곳곳에서 곧잘 일어나고 있는 불효막심한 행위들이 새삼 효에 대한 세태의 변화를 절감하게 한다.
병도 없는 연로한 부모를 장기간 병원에 입원시키거나 간병인에게 맡겨놓고 여행가거나 여가를 즐기는 젊은 자식들이 점점 늘고 있다는 것이다. 병원에서 혼자 쓸쓸하게 숨을 거두는 노인도 종종 있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현대판 고려장이라고나 할까. 고려장의 설화는 이 경우에 커다란 교훈이 될 것이다. 병원에 혹은 골방구석에 내팽개쳐진 늙인 어버이들의 외롭고 지친 모습이 몇년후 자기자신의 모습이 되리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늙고,누구나 죽기 때문이다.<정규웅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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