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회사 1호 제품-삼양 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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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국수가 퍼머를 하면 라면』이라는 유행가도 있었지만 63년9월 삼양라면이 처음 나왔을 때는 『무슨 옷감이 새로 나왔느냐』고 하던 사람들도 많았다.
5원짜리 「꿀꿀이 죽」으로 점심을 때우던 사람들이 아직도 많았던 그 시절, 라면이 대용식품이 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던 박정희 대통령은 삼양의 전중윤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좀더 맵게 만둘 수는 없느냐』고 라면 맛을 직접 챙기기도 했다.
일본 라면을 본떠 만들었던 삼양라면 1호는 맛도 일본 맛처럼 싱거웠던 것이다. 『밥도 아닌 것이 어떻게 주식이 되느냐』는 일방의 인식 부족도 문제였다. 주황색포장에 닭 그림이 그려진 10원짜리 삼양라면 1호 판매는 참담한 실패작이었다.
당시로는 거액이었던 5만 달러의 외자서 얻어 일본에서 기계설비를 들여오며 성공을 확신했던 삼양측으로서는 큰 낭패였다.
하는 수 없이 겉포장에 조리 방법을 자세히 적은 2호 제품이 등장했고 전 직원이 동원돼 서울역 광장, 남대문시장, 대한극장앞 등 주요 장소에 대형 가마솥을 걸어 놓고 라면을 직접 끓여 공짜로 제공하는 일명 「가마솥 작전」을 벌였다.
큰 공장이나 회사의 점심시간이면 어김없이 삼양직원들이 나타나 가마솥을 내걸었으며 직원부인들까지 냄비를 들고 이웃집을 돌며 무료시식회를 열었다.
1년이 넘게 계속된 이같은 노력 끝에 라면이 점점 일반인들에게 알려지면서 삼양라면 2호 제품은 65년부터 비로소 첫 흑자를 내기 시작했으나 라면이 폭발적인 판매 증가세를 탄 것은 라면수프에 고춧가루와 마늘을 대폭 보강, 우리 입맛에 더 가깝게 한 삼양라면 3호가 66년부터 시판되면서부터였다. <이효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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