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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 돈선거하니 우리도 닮아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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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어린의 신문고의회’에 참석한 어린이 의원들이 보건복지부 정연희 사무관과 함께 안건 채택을 위한 개표를 진행하고 있다. 강정현 기자

"나는 전국의 어린이를 대표해 어린이의 안전과 권리를 위해 노력할 것을 선서합니다."

1일 오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 세미나실. '어린이 신문고의회' 심은정(경기 비산초 6) 의장의 선서가 끝나자 51명의 어린이가 진지한 얼굴로 "선서합니다"를 따라 외쳤다. 아동인권단체 '세이브더칠드런'이 주관한 이날 행사에서 수도권 지역에서 선발된 4~6학년 어린이 의원들은 자신의 권리와 안전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회의에 앞서 전국 어린이들이 인터넷에 제기한 문제 중 10개를 골라 토론에 들어갔다. 토론 주제에는 아동학대 근절, 인터넷 중독 예방 등이 포함됐다.

"어른들이 뭐든지 돈으로 해결하려 하기 때문에 어린이회장 선거에도 뇌물이 오갑니다. 학교가 강한 규칙을 정해야 합니다."(우성훈.개봉초 5) "게임 중독이 문제라고 하는데 어린이가 갈 수 있는 게임방이 너무 많습니다. 주변에는 말리는 어른들도 없습니다."(이장원.신명초 6)

의원들은 의장의 지시에 따라 한 명씩 앞으로 나와 문제점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어른 같은 딱딱한 말투는 낯설었지만 당당히 의견을 밝히는 모습은 여느 국회의원보다도 더 의젓했다. 다른 의원이 이야기할 때는 50명 모두 숨죽인 듯 경청하기도 했다.

회의 분위기가 무르익자 어린이 눈높이로 본 갖가지 의견도 쏟아져 나왔다. 오주영(서울 방이초 5)군은 "부모의 무관심이나 불화가 어린이의 정신장애를 만든다"며 "부모들이 결혼 생활을 잘하고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져 줘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우(상원초 5)군은 "맞벌이 부모가 늘어나고 가정이 무너지면서 학대받는 아이들도 늘고 있다"고 주장했다. 어린이들의 잘못된 생활습관을 지적하는 의원도 있었다. 김태용(신명초 6)군이 "게임에 중독되지 않으려면 컴퓨터는 거실에 두고 정해 놓은 시간을 꼭 지켜야 한다"고 말하자 동료 의원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어린이 의원들은 한 시간의 의견 발표를 끝내고 투표를 통해 10개 안건 중 ▶어린이 교통사고 예방 ▶불량식품 근절 ▶어린이 성범죄 근절 ▶아동학대 근절 ▶인터넷 중독 예방과 치료 등 5개 안건을 채택했다. 이날 채택된 안건은 5일 어린이날 행사에서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의회에 참석한 전기현(경기 이현초 5)군은 "내가 어린이를 대표하는 국회의원이라고 생각하니 저절로 엄숙해진다"며 "내가 잘못한 것과 어른들의 잘못을 진지하게 생각해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행사에 참석한 복지부 이재용 아동안전권리팀장은 "정부는 채택된 결의안을 정책에 반영하고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내년 의회에서 반드시 보고하겠다"고 약속해 의원들의 박수를 받았다.

김은하 기자<insight@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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