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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평점 B+ … 일반상품 A, 서비스시장은 D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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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19면

한ㆍ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 타결을 두고 많은 의견이 쏟아지고 있다.'

한ㆍ미 FTA 협상 부문별 평가 성적표

‘협상 잘했다’ ‘수준이 높다’는 소리와 ‘완전히 안방까지 내줬다’ ‘수준이 낮다’는 소리가 겹쳐 들리고 ‘많이 챙겼다’고 보는 견해와 ‘미국 손에 놀아났다’는 의견이 서로 팽팽하다.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협상을 두고 딱 잘라 ‘좋다, 나쁘다’를 판단하기 힘든 이유는 ‘무엇이 좋은 FTA 협상인가’ 또는 ‘무엇이 국익에 보탬이 되느냐’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없기 때문이다. 무역수지가 개선되는 것을 국익이라고 보는 사람들은 ‘우리 시장은 덜 열고 미국 시장은 많이 열수록 좋은 협상’이라고 하는가 하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한국의 입장이 많이 반영되는 것을 국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미국 입장보다 우리 입장이 더 많이 반영될수록 좋은 결과’라고 한다.

여기서는 한ㆍ미 FTA 협상 결과가 좋으냐 나쁘냐를 판단할 때 두 가지 기준으로 보기로 한다. 그 한 가지는 ‘한국 입장이 얼마나 반영되었나’이고, 다른 한 가지는 ‘얼마나 개방이 되고 제도가 개선되느냐’다.

이들 기준으로는, 이번 FTA 협상은 예상했던 대로(4월 8일자 중앙SUNDAY 5면 참조) 좋은 협상이긴 하지만, 내놓고 자랑할 만큼 흡족한 결과를 내진 못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입장이 많이 반영되고 또 상당한 제도개선이 기대되어 좋기는 한데, 미국이나 한국 시장의 개방 정도가 미흡하기 때문이다. 걱정했던 것에 비하면 민감 농산물 시장을 덜 개방하게 된 것은 잘된 일이지만, 개방이 절실한 서비스 시장이 그다지 열리지 않았다는 얘기다.

우리 입장이 반영되고 또 우리의 제도 수준이 높아진다는 점에서 A를 줘야겠지만, 시장개방이나 제도개선 기준으로는 기껏 해야 B학점이나 줄 수 있을까? 따라서 두 가지를 동시에 고려하면 이번 FTA 협상 결과는 B+ 정도가 될 것 같다.

농산물
(한국 입장 반영 A, 개방 등 수준 C)

농산물 시장에 관한 협상은 예상대로 또 우리의 바람대로 결말이 났다. 쌀은 개방리스트에서 아예 빠졌고, 몇 가지 민감 품목도 개방하지 않기로 합의를 봤다. ‘예외 없는 개방’을 고집하던 미국이지만, 반대시위 등을 통해 한국인이 농산물 시장 개방에 얼마나 민감한지를 알게 되어 한국 정부의 입장을 배려한 결과다.

쇠고기는 서로가 윈-윈하는 결과를 도출했다. 쇠고기의 안전성과 관련해 5월에 국제수역사무국(OIE)이 내릴 판단이 긍정적이면 수입을 허용하기로 합의했기 때문에 어찌 됐든 미국 쇠고기는 들어오게 됐다. 한국은 미국에 일방적으로 밀린 게 아니라 OIE 판단에 따른 것이란 명분을 챙겼고, 그만큼 충격을 줄일 수 있어 일부 체면을 세울 수 있게 됐다.

여타 농산물은 관세를 즉시 철폐하는 것에서부터 15년 안에 철폐하는 것까지 다양한 단계적 개방에 합의했다. 훗날 일부 민감 품목을 빼고는 대부분 농산물의 관세가 철폐된다는 점은 농민이나 정부로서는 상당한 부담을 지는 것이다.

일반 상품
(한국 입장 반영 A, 개방 수준 A+)

공산품 등 일반 상품 시장개방에서는 양국 모두 승자다. 양쪽 모두 시장을 활짝 열자는 입장이어서 100% 개방키로 했다. 놀랍다. 그중에서 즉시 관세를 철폐하거나 3년 안에 철폐하기로 한 품목의 비중이 90% 정도 된다니 큰 성과다.

관심을 모았던 자동차나 섬유의 경우, 미국에 시장을 많이 열라고 요구했던 한국의 입장이 주로 채택되었다. 미국은 한국이 주로 수출하는 중ㆍ소형차에 대해서는 관세를 즉시 철폐하고 다른 차는 3년에서 10년 안에 관세를 없애기로 했다. 대신 한국은 미국 차에 불리한 자동차 세제를 개선하거나 세율을 낮추기로 했다. 관세도 우리가 아직 개발초기단계인 환경친화 자동차를 제외하고는 즉시 없애기로 했다. 세제 개선 부문은 앞으로 유럽연합(EU)과 FTA 협상을 할 때 약점 하나를 제거한 셈이다.

또 미국은 섬유 전체 품목의 87%에 해당하는 제품의 관세를 즉시 풀고, 원산지 규정 등도 우리에게 좀 완화하기로 했다. 미국에서 섬유 부문이 갖는 민감성을 고려할 때 상당한 양보였다. 한국은 섬유제품의 97% 품목에 대한 관세를 즉시 풀기로 했다.

서비스 시장
(한국 입장 반영 B, 개방 수준 D)

여기서는 양국은 처음부터 개방은 하되 조금만 하기로 작심한 듯 협상을 진행해왔다. 그 결과 양국은 모두 패자가 됐다. 특히 서비스 시장을 가급적 열지 않으려 했던 한국의 입장이 더 많이 반영됐다.

문제는 개방의 정도다. 법률이나 회계 시장은 몇 년씩에 걸쳐 개방하기로 했고 통신사업도 일부 허용키로 했지만, 스크린쿼터나 자주 언급되지 않은 여타 서비스 시장은 추가로 개방하지 않아도 되도록 합의했다.

특히 교육이나 의료 등 분야는 대외개방으로 경쟁력을 높이지 않으면 국제수지 적자가 더 심해질 뿐 아니라 국가경쟁력을 높일 수 없다고 그렇게 지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부문 이해관계자들의 강한 반발에 밀려 개방하지 않기로 했다. 이 점은 EU와의 FTA 협상에서 우리의 약점으로 작용할 것이고, 중국과의 FTA 협상에서는 우리의 중요한 협상카드 하나를 버린 셈이 된다.

교육ㆍ의료뿐 아니라 시장을 더 열지 않기로 한 여타 서비스 부문까지 고려하면, 한ㆍ미 FTA를 통해 국가경쟁력을 키우고 선진국으로 발돋움한다는 기대는 상당 부분 접을 수밖에 없다.

제도 개선
(한국 입장 반영 B, 수준 A)

양국 간 협상에서 일반 상품 시장 다음으로 좋은 결과가 나온 게 제도개선 부문이다. 제도변혁을 걱정하는 한국의 입장보다는 많은 제도개선을 원했던 미국의 입장이 더 반영된 결과다.

한국이 관심을 두었던 무역구제 제도 중에 세이프가드(긴급 수입제한조치) 부분은 일부 진전이 있었다. 여러 수입국에 적용하는 세이프가드에서 한국을 따로 배려하기로 하고 양국 간에 별도의 세이프가드를 두기로 한 점은 돋보인다.

그러나 한국이 협상에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던 미국의 반덤핑제도 개선에서는 ‘위원회를 만들어 추후에 논의해보자’는 것 외에는 별다른 성과가 눈에 띄지 않는다. 사실 반덤핑제도는 미국이 수많은 비판에도 불구하고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으로서의 권리를 갖고 마련한 국내 제도’라는 주장으로 버텨왔다는 점에서 처음부터 쌍무간 FTA 협상을 통해 개선하기 힘든 사안이었다.

다른 제도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괄목할 만한 개선점들이 있다. 그 첫 번째가 투자자-정부 간 제소 또는 분쟁해결 절차다.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대상국 (예를 들어 한국)정부의 정책 때문에 큰 손해를 입은 경우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소할 수 있는 이 제도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많은 정책과 제도가 그 대상이 되기를 원했을 것이다. 그만큼 한국 정책의 일관성 또는 외국 기업에 대한 차별적 성향을 걱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정책과 제도가 외국인 투자자의 손에 좌지우지될 수 없다고 판단하는 한국 정부가 고집해 부동산과 조세정책 등은 이 제도의 적용대상에서 빼기로 합의했다. 적어도 부동산과 조세정책을 제외하고는 잦은 정책변화나 또는 특정기업군에 불리한 정책은 많이 자제될 것이고, 그만큼 우리 정책의 수준이 높아질 가능성이 커졌다.

향후 몇 년을 내다볼 때 투자자-정부 간 제소보다 더 심대하고 제도와 상(商)관행을 선진국 수준으로 높이는 데 기여할 제도에 관해 양국은 많은 합의를 했다.

기술표준제도를 운용함에 있어 투명성을 높이고 관련 부문의 입장을 청취하기로 하는 등 소위 ‘good regulatory practice’(규제와 제도를 운용함에 있어 투명성ㆍ합리성 등의 면에서 높은 수준의 국제적 기준)를 따르기로 한 점, 지적재산권 보호를 강화하기로 한 점, 미국의 정부 조달 시장을 넓히고 한국 기업들이 차별받지 않게 한 점 등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또 기업규제에서 동의명령제(제재에 들어가기 전에 기업이 시정조치를 취할 수 있게 하는 제도)를 도입하고, 노동ㆍ환경 부문에서 제도를 바꾸거나 운용하는 과정에 관련 부문의 참여 폭을 넓히기로 한 점 등은 양국이 합의한 것 중 의미있는 사안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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