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경제학] 정관 복원수술 막는 의보 시스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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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호 19면

딸(12) 하나를 둔 회사원 백모(42) 씨는 얼마 전 부인을 설득해 둘째를 낳기로 했다. 형편이 넉넉하진 않지만 더 미루면 영영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였다. 그러나 백씨의 결단은 처음부터 벽에 부닥쳤다. 5년 전 묶었던 정관을 풀기 위해 경기도 성남시의 한 비뇨기과의원을 찾았지만 의사도 만나지 못한 채 발길을 되돌려야 했다. 간호사가 “우리는 그런 걸 하지 않는다”며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 가보라”고 했다. 그는 “정관 복원수술이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받은 2004년 이후로는 수술을 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이 의원뿐 아니라 다른 곳도 마찬가지였다. 시내에서 복원수술을 하는 의원은 열 곳 중 한두 곳뿐이라는 게 의사들의 설명이다.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정부까지 부산을 떨고 있는데 현장에서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질까. 의사들은 수술 난도와 위험에 비해 수가(酬價)가 턱없이 낮다고 주장한다. 정관을 묶는 것은 간단하다. 하지만 이를 다시 연결하는 것은 길게는 두 시간까지 걸리는 정밀시술이다. 현미경 등 고가 장비를 갖춰야 하고 재료비도 만만치 않다. 봉합용 실만 해도 보통보다 값이 10배 이상 비싼 특수 실을 써야 한다. 이 때문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기 전 정관 복원수술 비용은 150만∼200만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수술을 해봐야 고작 30만원이다. 수술 수가 16만8800원에 진료비와 재료비를 더한 금액이다. 의사들은 “품삯도 안 나오는 수준”이라고 한다. 하지만 국민건강보험공단 측의 설명은 다르다. 수가는 의사 등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한 위원회에서 실제 비용을 감안해 정해진다는 것이다. 일부에선 “의사들이 성클리닉 등 돈이 되는 비보험 진료에만 열을 올리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어쨌거나 피곤한 건 백씨 같은 사람들이다. 백씨가 의원에서 수술을 받으면 전체 비용 30만원 중 30%인 9만원만 본인 부담금으로 내면 된다. 하지만 종합병원에선 이 비용이 20만원 이상 든다. 본인 부담률이 50%로 높아지고 특진비 등 부가비용이 추가된다. 대기시간이 몇 배로 길어지고 집에서 멀리 다녀야 하는 불편도 감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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