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VY LEAGUE 門은 좁아지고 파워는 더 세지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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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04면

“왜 이런 신변잡기로 귀중한 지면을 채우는 거야?” 월터의 ‘고백’을 읽은 미국인들은 아마도 이렇게 반응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공감할 것이다. 미국인들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대학 간 서열 구분이 심하며, 또 입학기준이 ‘부조리’한 사회에서 살고 있기 때문이다. 이웃 캐나다만 해도 대학 간 서열화는 거의 의미가 없다. 엘리트 대학 교육으로 유명한 프랑스도 그랑드제콜을 제외하고는 모든 대학이 비슷비슷하다.

그렇다면 2007년 4월의 아이비리그 위상은 어떨까? 저명한 한 미국 언론인에게 평생의 화두와 한을 남긴 그 정체는 무얼까?

아이비리그는 미식축구 등 1935년에 조직되기 시작한 대학 간 운동경기 연맹을 구성하는 대학들이다. 하버드ㆍ예일ㆍ프린스턴 등 8개 사립대학이다. 합격률이 9~20%에 불과할 정도로 들어가기 힘들며, 학문적으로 세계적 명성을 자랑하는 대학들이다. 1983년부터 유에스뉴스&월드리포트가 매년 발표하는 미 대학 순위에서 최상층부를 점한다. 미국 정계ㆍ재계ㆍ학계에선 아이비리그 출신들이 차지하는 위상을 따지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재정도 넉넉하다. 하버드가 확보한 기금은 292억 달러다.

아이비는 4500여 미국 대학의 서열을 구분 짓는 중심적 역할을 한다. 아이비리그는 또 파생개념의 시발점이기도 하다. 하버드ㆍ예일ㆍ프린스턴만 떼어내 ‘빅스리(Big3)’라고 부른다. ‘아이비 플러스(Ivy Plus)’는 아이비리그 학교에 스탠퍼드와 MIT를 더한 학교군(群)이다. ‘리틀 아이비(Little Ivies)’는 애머스트ㆍ스와스모어ㆍ윌리엄스 등 학부 중심의 명문 대학을 가리킨다. ‘퍼블릭 아이비(Public Ivies)’는 명문 주립대들인 UC버클리, 미시간, 버지니아 등을 말한다. 그리고 ‘신흥 아이비(New Ivies)’는 카네기멜런, 보스턴칼리지 등 아이비 대학들과 견줘도 손색없는 25개 대학이다.

아이비리그 합격은 인생의 성공을 보증하는 수표가 될 수 있을까?

지난해 9월 18일 월스트리트저널은 미국 500대 회사 CEO 중 아이비리그 출신은 10%에 불과하다고 보도했다. 지도력ㆍ성취욕구 등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달리 해석할 수도 있다. 하버드대 경제학과 교수 그레고리 맨큐는 아이비 졸업생이 미 전체 졸업자의 1%라고 했을 때 500대 기업 CEO의 10%라는 것은 아이비 출신이 CEO가 될 확률이 다른 대학 졸업자의 10배라고 분석한다. 또 다른 해석은 아이비리그 출신은 연봉이 높은 금융ㆍ법률ㆍ컨설팅 분야로 직행한다는 것이다. 회사에 들어가 밑바닥부터 출발하지 않는다.

사실 아이비 출신과 비아이비 출신 간의 소득 차가 별로 없거나 오히려 비아이비 출신이 더 성공적인 인생을 산다는 연구 결과도 많다.

그러나 미국 학생들과 학부모들은 기를 쓰고 아이비 입학을 꿈꾼다. 하버드의 올해 입시는 역대 최고의 경쟁률인 11대 1을 기록했다. 4일자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하버드는 SAT 중 수학 부문 만점자 1100명을 떨어뜨렸다. 다른 아이비 학교도 마찬가지의 호황을 누리고 있다. 왜일까?

우선 아이비를 나오면 기득권층에 속하게 된다. 그 매력을 떨치기 힘들다. 예컨대 올해 하버드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졸업 후 27만 명 이상의 동문들로부터 각종 도움과 고급 정보를 받을 수 있다. 아이비를 나오면 취업이 쉽고, 몇 년 회사를 다니다가 아이비의 MBA나 법과대학원을 졸업하면 30대 초반에 평균 15만 달러의 연봉을 받을 수 있다. 베이비붐 세대 자녀들이 대거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한 요인이다.

최근 아이비리그 학교들은 저소득층 자녀들에게 학비를 면제하고 있기 때문에 미국 중류 이하 학생들의 아이비 진출도 대폭 확대됐다. 공동지원(Common Application) 제도를 통해 인터넷으로 동시에 여러 대학에 지원할 수 있는 것도 응시율 증가를 부추기고 있다. 대학들 간의 치열한 경쟁도 한몫한다. 일부 대학의 입학사정관은 전국의 고등학교를 돌아다니며 학교 설명회를 개최, 지원을 유도한 다음 떨어뜨린다.

그러나 이렇게 위풍당당한 아이비리그에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우선은 엘리트주의와 기득권 사수를 위한 아이비의 행태가 비판 대상이다.

아이비리그 학교들은 학생을 성적순으로 뽑지 않는다. 입학사정의 기준은 학부성적, 과외활동, 에세이, 인터뷰, SAT나 ACT점수 등을 감안해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그래서 SAT 만점에 각종 특별활동 및 봉사, 수상 경력이 있어도 불합격되기 다반사다. 졸업 후 모교의 명예를 높이고 기부금도 낼 수 있는 지도자 자질은 학교 당국이 판단한다는 것이다.

아이비 입학 사정은 마치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 듯 운영된다. 부모가 아이비면 자식도 아이비 진학이 쉽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동문 자녀 입학(legacy admission) 비율은 10~15%에 달한다. 프린스턴대 사회학과 교수인 더글러스 매시는 동문 자녀의 입학률은 비동문 자녀에 비해 50%가 높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게다가 아이비 학교에는 비밀결사체가 존재한다. 아이비라는 기득권으로도 모자라 이너서클(inner circle)이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니 어떤 일이 빚어질까? 자식을 사랑하고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자식을 위해 희생하려는 마음은 어느 나라나 똑같다. 그래서 미국 부모들은 입학 컨설팅으로 수천 달러에서 3만 달러까지를 지급하며, 좋은 학군을 찾아다니는 미국판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한다. 무리를 해서라도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나온 필립스아카데미 등 프렙스쿨(prep school)로 불리는 명문 사립고에 입학시킨다. 고등학교 학비가 2만5000~3만 달러에 달하지만 아이비리그 학교에 졸업생이 많이 들어갈 수 있도록 전담 교사가 각 대학 입학사정관들과 협상을 벌여 일정 수 이상의 학생들을 입학시킨다.

이처럼 많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아이비가 사회적 위상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에는 아이비 나름의 다원주의가 있다. 석ㆍ박사 과정의 경우 어느 대학 학부를 나왔는지를 따지지 않고 오직 실력만 본다. 비아이비 출신도 아이비 교수가 된다. 패자부활전이 있다. 또한 이들은 30~40대 나이의 학생들에게 야간 과정을 제공하며, 이들 중 일부는 정규 학위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2049년 4월. 그때도 아이비가 있을까 ?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화와 아이비리그 전통이 결합되면 어떻게 될까? 이에 대한 전망은 위에서 얘기한 ‘아이비 플러스’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하버드를 ‘동부의 스탠퍼드’라고 얘기하는 스탠퍼드와 아이비 한계 극복이 설립 취지인 MIT는 아이비에 도전하는 대표적 대학들이다. 그러나 이들은 ‘아이비 플러스’라는 형식으로 아이비에 편입되고 말았다. 아이비 도전에 나설 여타 대학들도 같은 운명을 걷게 되는 것은 아닐까? 2049년에는 전 세계 규모의 ‘수퍼 아이비’가 탄생할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정점은 어느 한국 대학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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