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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행정부·의회 대한반도 라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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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호 12면

미국의 북핵 실무 핵심 미국의 크리스토퍼 힐 국무부 차관보(오른쪽)와 빅터 차 백악관 안보보좌관(왼쪽)이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천영우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가운데)과 함께 노무현 대통령 접견을 기다리고 있다. 힐과 빅터 차는 북핵 문제를 담당하는 핵심 실무진이다. [연합뉴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의 한반도 정책이 실용주의로 바뀌면서 그를 보좌하는 한반도 라인의 면모도 달라졌다. 백악관과 국무부, 국방부에선 강경파가 퇴조했다. 카우보이식 압박외교를 구사한 네오콘의 자리는 이제 대화와 설득의 외교를 강조하는 현실주의자들로 채워졌다.

힐 차관보, 국무부에 한국계 대거 발탁
한반도 담당 새 국방부 실무 책임자 제임스 신,
유연한 사고로 한·미동맹 조정 원활할 듯

국무부·백악관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은 강력한 외교팀을 구성하고 있다. 총체적 난관을 돌파하기 위해서다. 국무부의 존 네그로폰테 부장관을 비롯해 이란 핵문제를 다루는 니컬러스 번스 차관, 데이비드 새터필드 이라크 담당 조정관, 앤 패터슨 차관보, 데이비드 웰치 차관보와 북한 핵 협상을 맡고 있는 크리스토퍼 힐 차관보가 그들이다. 타임지는 최근 이들 외교팀 인사들이 경력의 대부분을 분쟁을 조정하고 험지(險地)에서 협상을 하는 데 보낸 국무부의 ‘지옥파(Hellhole Gang)’라고 보도했다. 이들은 실용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으며 외교와 협상, 다자주의를 강조한다.

라이스-네그로폰테-힐로 이어지는 국무부 한반도 라인은 부시의 강한 신임을 받고 있다. 부시는 북한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각종 정책적 판단을 라이스에게 일임한 상태다. 그런 그를 실무적으로 보좌하는 이가 네그로폰테와 힐이다.

톰 랜토스 

네그로폰테는 미국의 16개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장관급 국가정보국(DNI) 국장에서 국무부 부장관으로 올 1월 이동했다. 부시가 외교관 출신인 그를 친정으로 돌려보낸 것은 국무부의 외교력을 키울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는 게 워싱턴 외교소식통들의 분석이다. 라이스는 북핵뿐만 아니라 이라크전과 이란 핵문제, 수단의 인종청소 문제 등도 다뤄야 하는 만큼 그의 부담을 덜어줄 외교전문가로 네그로폰테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네그로폰테는 중동 전문가이지만 한국도 잘 아는 편이다. 1970년대 말 리처드 홀브룩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 밑에서 한국을 담당했다. 국가정보국장 시절엔 대북 협상 경험이 있는 조셉 디트라니를 북한 담당관으로 임명, 그를 통해 북한 문제를 계속 파악해왔다.

주한 대사에서 차관보에 오른 힐은 냉전 종식 이후 유고슬라비아 평화협상(데이턴 합의)을 성공적으로 이끈 유능한 협상가다. 폴란드 대사를 지내면서 동유럽과 미국 관계를 한 단계 끌어올리기도 했다. 한국 대사로 있으면서 북핵 문제를 파악할 기회를 가졌고, 이를 바탕으로 6자회담 대표로 부시와 라이스의 지원을 받아 협상을 이끌고 있다.

라이스는 북한과의 협상 현장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때 힐의 판단에 맡긴다. 지난해 12월 베이징(北京)에서 열린 6자회담이 아무런 성과를 내지 못했을 때 힐은 북한대사관에 사람을 보냈다. 그리고 “당신들이 원하는 게 정말 뭐냐. 당신들이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만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때까지 미국은 대북 양자대화의 모양새에 대해선 거부반응을 보였으나 힐이 제안한 것은 직접 대화였다. 북한은 힐의 아이디어를 받아들여 올 1월 독일 베를린에서 미국과 접촉했고, 2·13 합의의 골격을 만들었다.

백악관 한반도 라인은 스티븐 해들리 국가안보보좌관을 정점으로 중앙정보국(CIA) 출신의 데니스 와일더 동아시아 담당 선임보좌관, 한국계인 빅터 차 보좌관 등으로 구성돼 있다. 힐이 북한대사관에 “대화를 하자”고 보낸 메신저는 다름 아닌 빅터 차였다. 조지타운대 교수 출신인 그는 ‘강경 관여(hawkish engagement)’ 개념의 주창자로 대북 유인책 제공과 함께 필요시 제재의 사용을 강조해왔다. 그는 얼마 전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북한 핵 위기는 외교로 해결하는 게 옳다”며 “내가 상아탑에 있었을 때와 지금의 생각은 다르다”고 했다. 빅터 차는 라이스와도 친분이 있다. 그가 1990년대 스탠퍼드대의 후버연구소 연구원으로 있을 때 라이스는 같은 연구소 선임연구원이었다.

힐은 국무부 한국 데스크의 요직을 한국계로 채워놓고 있다. 발비나 황 헤리티지재단 연구원을 자신의 특별보좌관으로 임명했다. 국무부 한국과장 성 김, 북한팀장 유리 김도 주한 미국대사관에서 일한 경력이 있는 한국계다. 우리 문화와 풍습을 잘 알며, 우리말에 능통한 이들은 힐이 북한의 전략과 의도를 이해하는 데 필수적인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국방부

대북 강경파인 도널드 럼즈펠드 장관이 물러난 뒤 많이 달라졌다. 국방부가 대북 협상에 직접 관여하는 모습은 이제 찾아보기 어렵다. 로버트 게이츠 새 장관 임명 후의 변화다. 국방부는 한반도 안보상황과 한·미 군사동맹을 관리하는 일에 주력하고 있다.
국방부의 한반도 업무는 사실상 리처드 롤리스 부차관이 맡아왔다. 미 국방부 수뇌부의 주된 관심사가 이라크 문제이기 때문이다. 최근 사임 의사를 밝힌 그는 전시작전통제권 한국군 전환을 비롯한 한·미 동맹 재조정 문제에서 럼즈펠드의 방침을 충실히 따르며 한국에 고압적인 자세를 보였다. 본인은 디스크 수술 등 건강상의 이유를 들었지만 국방부 쪽에선 “럼즈펠드라는 큰 우산이 없어졌기 때문”이란 얘기가 나온다. 롤리스는 CIA 출신으로 한국 근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극비 핵개발 계획을 알아내는 데 공을 세웠다고 한다.

그의 후임엔 제임스 신 수석 부차관보가 내정됐다. 신 부차관보는 게이츠 장관처럼 CIA 출신으로 조지타운대 교수, 국가정보국 동아시아 담당 정보관을 역임했다. 국가정보국에선 동아시아를 담당하면서 2020년 세계 정세를 전망하는 종합보고서 ‘글로벌 트렌드 2020’ 중 한반도 부분을 집필했다고 한다. 하버드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하고 은행과 반도체 회사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신 부차관보도 게이츠 장관 못지않게 유연한 사고의 소유자라는 평을 듣고 있다. 국방부 한국과 과장인 마이클 피네건 중령은 지한파다. 그는 한국에서 9년간 근무했다.

의회

지난해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압승함으로써 외교안보 정책에 대한 의회의 영향력이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부시 대통령이 북한에 대해 실용주의적 접근법을 구사하고 있는 데엔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의 압력이 작용한 탓도 있다. 네오콘은 ‘나쁜 행동엔 보상하지 않는다’며 대북 대화를 거부해왔으나 민주당은 “그러면 상황이 악화될 뿐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고 비판해왔다. 민주당이 2·13 합의를 “잘한 일”이라고 평가하는 건 이런 이유에서다.

민주당 소속 톰 랜토스 하원 외교위원장은 다음달 북한을 방문하는 계획을 추진 중이다. 북한 핵폐기와 북·미 관계 개선을 민주당 차원에서 도모하기 위해서다. 그는 “체니 부통령실이 대북 정책에 관여하는 걸 막아야 하며 힐 차관보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말을 여러 번 했다. 그는 ‘말 대 말, 행동 대 행동’ 방식으로 북한 문제를 푸는 걸 지지한다.

하지만 북한 인권문제에 대해선 단호하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대인 수용소에서 탈출한 경험이 있는 그는 철저한 인권옹호론자다. 그는 “제 욕망만 채우는 북한 지도부는 고통을 겪어야 한다”며 북한에 사치품 수출 등을 금지한 유엔 제재를 적극 지지했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출마를 선언한 조셉 바이든 상원 외교위원장도 대북 직접 대화론자다. 그는 네오콘을 혐오한다. 부시와 체니 면전에서 체니와 럼즈펠드의 사임을 촉구했을 정도다. 바이든은 또 부시 대통령이 존 볼턴 전 국무차관을 유엔대사로 지명했을 때 상원에서 ‘인준 불가’라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앞장섰다. 북한과 대화하면서 핵문제를 풀어나가는 일을 할 ‘대북 정책조정관’을 부시 대통령이 임명해야 한다는 내용의 법안을 같은 당 칼 레빈 상원 군사위원장 등과 공동 발의해 통과시킨 사람도 바이든이다.

이번에 북한을 방문한 빌 리처드슨 뉴멕시코 주지사는 의원은 아니나 민주당의 대북 정책에 큰 영향을 미치는 북한통이다. 당 대선후보 경선에 도전할 뜻을 밝힌 그는 당에서 북한 측과의 접촉이 가장 활발한 인물이다. 북한을 여섯 번 방문했을 뿐 아니라 지난해 12월엔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김명길 공사 등을 산타페의 공관으로 초대하기도 했다. 북한의 선의를 강조하면서 핵문제에 대해 낙관적인 해결 전망을 내놓은 그에 대해선 “북한에 이용당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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