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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부른다 정의의 수퍼히어로~~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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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호 12면

왜 사람들은 수퍼히어로에 열광하는 것일까? 현실과 거리를 두는 키덜트(KidultㆍKid+Adult)의 유아적 취미일까, 영웅 신화의 현대적 재연일까. 어쩌면 이상한 옷차림을 제외하고는, 현실의 영웅과 수퍼히어로의 차이는 없는 것이 아닐까? 대중은 스포츠 영웅이나 난세를 구원할 영웅에게 열광한다. 평범한 우리들 사이에서 비범한 영웅이 탄생하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이다. 최근 미국에서 인기 절정인 SF드라마 ‘히어로즈’는 이런 문구로 시작한다. ‘비범하다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능력을 지닌 채 (수퍼히어로가) 출현하고 있다. 지금은 깨닫지 못하고 있지만, 이들은 세계를 구할 뿐만 아니라 영원히 변화시킬 것이다. 평범함에서 비범함으로의 변혁은 하룻밤 사이에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이야기에는 시작이 있다’.

만화에서 영화로 뛰쳐나온 영웅들

‘배트맨 비긴즈’ ‘수퍼맨 리턴즈’ ‘판타스틱 포’ ‘헐크’ ‘데어데블’ ‘엘렉트라’ ‘퍼니셔’ ‘헬보이’ 등 최근 할리우드의 주요 트렌드가 된 만화 원작 영화의 시발점은 ‘엑스맨’(2000)과 ‘스파이더맨’(2002)이었다. ‘엑스맨’과 ‘스파이더맨’은 원색의 수트를 입고 공중을 나는 수퍼히어로가 단지 아이들만의 영웅이 아님을 입증했다. 21세기에 새롭게 시작된 수퍼히어로 영화는 그들이 우리의 영웅이자 분신임을 입증했다. 돌연변이로 태어난 엑스맨들은 단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공동체에서 박해받는 소수자들의 고뇌를 보여준다. 스파이더맨은 나와 세계, 개인의 성취와 사회적 헌신 사이에서 흔들리는 젊은 세대의 초상을 예리하게 표현했다. 인디펜던트 영화를 만들며 탁월한 경력을 쌓았던 ‘엑스맨’의 브라이언 싱어와 ‘스파이더맨’의 샘 레이미는 거대한 스펙터클에 주눅 들지 않고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보편적인 고뇌와 갈등을 심오하게 파고들었다.

‘엑스맨’과 ‘스파이더맨’의 출현에는 이유가 있었다. 80년대 중반 미국의 만화계는, 68년의 영화혁명에 비견될 수 있는 거대한 혁명을 겪었다. 그것은 프랭크 밀러의 ‘배트맨/다크 나이트 리턴즈’와 앨런 무어의 ‘워치맨’으로 시작했다. 프랭크 밀러와 앨런 무어는 선과 악의 싸움에서 선을 대표했던 일면적인 영웅의 내면을 재구성했다. 배트맨은 자신의 행동이 정의를 위한 싸움이 아니라 개인의 복수가 아닌지 헷갈려 하고, 데어데블은 악이라는 수단으로 악을 처벌한다. 또한 정치적인 이슈에 직접적으로 대응하거나, 니체나 동양철학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이는 등 스토리 측면에서도 더욱 심오해진다. 만화의 표현 테크닉도 더욱 복잡해지고 실험적이 되면서, 만화는 아이들의 이해 수준을 뛰어넘는 명실상부한 성인의 ‘그래픽 노블’이 된다. 이처럼 만화의 ‘리얼리티’가 높아지면서 만화의 소비층은 아이에서 어른까지로 확장되었다. 이제는 만화가 황당무계한 공상이 아니라 현실에 기반을 둔 기발한 판타지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공유될 기반이 닦인 것이다.

깊어지고 넓어진 만화를 보며 자란 세대가 지금 할리우드의 만화 원작 영화를 만들고 있다. ‘체이싱 아미’와 ‘저지 걸’의 케빈 스미스는 유명한 만화광이고, ‘데어데블’이나 ‘그린 애로우’의 스토리를 쓰기도 했다. 케빈 스미스는 미국 만화계의 풍경을 패러디한 ‘제이 앤 사일런트 밥’이란 영화를 만들었고, 영화를 바탕으로 다시 만화도 만들었다. ‘식스 센스’의 M 나이트 샤말란은 ‘언브레이커블’에서 수퍼히어로 만화의 원화나 초판들을 자랑스럽게 선보이고, 내용에서는 수퍼히어로의 탄생 신화를 철학적으로 보여준다. ‘판의 미로’의 기예르모 델 토로는 ‘블레이드 2’에 이어 자신의 꿈이라고 했던 ‘헬보이’의 영화화를 이루어냈다.

‘브로크백 마운틴’의 이언 역시 만화광의 추억을 되살려 ‘헐크’를 만들었다. 이언의 최고 걸작인 ‘아이스 스톰’에는, ‘판타스틱 포’를 보는 소년을 통해 세대간의 단절과 투쟁을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새로운 감각으로 무장된 할리우드의 영화감독들에게, 만화는 중요한 자양분이었던 것이다. 한국에서 박찬욱이 ‘올드보이’를 만들고, 봉준호가 ‘설국열차’를 만들려고 하는 것처럼.

물론 만화의 수퍼히어로가 줄줄이 스크린에 입성하는 이유는 특수효과 덕분이 크다. 만화의 스타일을 스크린에 옮겼을 때의 어색함이 특수효과의 발달 덕분에 이젠 사라졌다. 오히려 팀 버튼의 ‘배트맨’이 만들어진 후 만화 원작 영화는 감독의 독특한 시각적 스타일을 과시할 수 있는 장으로 여겨지고 있다. 많은 감독이 자신이 반했던 만화를 영화로 옮기고 싶어 하고, 만화의 표현주의적 특성을 살려 자신만의 개성적인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스펙터클의 측면에서 보아도, 만화 원작 영화의 장점은 분명하다. 스파이더맨이 거미줄에 몸을 매달고 빌딩 숲을 누비는 광경을 스크린에서 보는 일은 정말 짜릿하다. 미국에서 수퍼히어로물(物)은 이제 소수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방영을 시작한 ‘히어로즈’는 한 회당 약 30억원의 제작비를 들인 값비싼 드라마다. ‘히어로즈’는 미국에서 매회 1400만 명의 시청자를 확보하며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다. 수퍼히어로물이 주류 문화의 궤도에 올랐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현상이다. 이미 가상현실의 의미를 깨달은 세대에게, 수퍼히어로의 존재는 공상이 아니라 현실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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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석씨는 영화ㆍ만화ㆍ애니메이션ㆍ게임ㆍ음악 등 대중문화 전반을 투시하는 전방위 평론가로 ‘B딱하게 보기’를 무기로 한 ‘봉석 코드’의 달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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