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명랑의 시네마 노트] 스파르타의 남자, 내 환상 속 남자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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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호 13면

무릇 환상은 존재한다. 잭 스나이더 감독의 영화 ‘300’은 누군가 내 머릿속에 들어와 내 환상을 스캔한 뒤 스크린에 담아낸 것 같은 영화였다. 이 영화의 주인공인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야말로 내 환상 속의 남자이기 때문이다.

잭 스나이더 감독 2006년 작 ‘300’

이 영화에서 잭 스나이더 감독이 그려낸 스파르타의 왕, 레오니다스는 어떤 남자인가? 스파르타의 법에 따라 어린 나이에 어머니와 헤어져 혹독한 시련을 견뎌냈으며 마침내 최후의 시험까지 통과해낸 남자, 눈 내리는 겨울 숲에서 야생의 늑대를 죽이고 살아남은 남자다. 한마디로 훌륭한 근육질에 뛰어난 지도력을 갖춘 데다 정의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각오가 되어 있는 완벽한 남자다. 그런데 이렇게 완벽한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 앞에서는 솜사탕처럼 부드러워지는 것이다. 모두가 두려워하는 남자, 세상 위에 군림하는 남자, 그러나 내 앞에서는 한없이 부드러워지는 남자…이런 남자의 여자가 되고 싶다는 환상을 여자라면 한번쯤 다 가져보지 않았을까?(어차피 이 글은 내 환상에 대한 이야기이니 당신의 환상과 일치하지 않더라도 불평은 하지 마시길)

사실 레오니다스 왕과 같은 남자가 이 영화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트로이’에도 레오니다스와 같은 남자는 있었다. “내 원칙은 단순하다! 신을 섬기고, 내 여자를 아끼고, 나라를 지키는 것!” 트로이의 왕자, 헥토르는 자신의 단순한 원칙을 외치고는 사지(死地)로 떠났다. 물론 죽으러 가기 전에 아내에게 도망가는 통로를 가르쳐주는 것은 잊지 않았다. 왜? 자신이 죽고 트로이가 멸망한 뒤에도 아내와 어린 자식은 살려야 하니까.

그런데 레오니다스 왕이나 헥토르 왕자 같은 남자는 왜? 어찌하여 모두 영화나 만화책이나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몇 년 전에 이런 내용의 신문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점점 여성화되어 가는 남자 아이들에 대해 독일사회 내에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고. 그 기사에 따르면 이혼 가정이 늘어나면서 남자 아이들이 어머니와 살게 되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으며, 초등학교에 입학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접하게 되는 선생님들도 대부분 여자인 경우가 많다, 그런 까닭에 성(性)모델로 삼을 수 있는 성인 남성과의 접촉 기회를 잃은 남자 아이들이 점점 더 여성화되어 가고, 이는 훗날 독일사회에 커다란 문제들을 야기할 것이다, 라는 요지의 기사였다. 이 기사를 다르게 해석하면, 남자다운 남자와 접촉할 기회가 많아지면 우리의 아들들도 얼마든지 레오니다스 왕이나 헥토르 왕자 같은 남자가 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300’은 그 내용에서는 문제가 많은 영화이기는 하다. 그러나 뭐 어찌 되었든 우선은 아주 잠깐이나마 내 환상을 충족시켜주었다는 점과 점점 더 여성화되어 가는 남자들에게 그들이 남자로서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한번쯤은 생각해보게 한다는 점에서 점수를 주고 싶은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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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랑씨는 시인으로 등단한 뒤 소설가로 건너가 명랑한 소설집 『삼오식당』 『슈거 푸시』 등을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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