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한 사람 30%만 유서 남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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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호 13면

연초에 가수 유니, 탤런트 정다빈씨가 잇따라 자살하자 인터넷에 자살이 아니라는 주장이 유포됐다. 법의학자가 자살이라고 추정하면 유족들은 “절대 자살할 리 없다”며 반발하는 경우가 많다. 타살이라고 결론을 내릴 때 유족들이 대부분 수긍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얼마 전 일이다. 훈련을 마치고 배치받은 신병이 한 달 만에 부대 창고에서 목을 맸다. 사병의 부모는 자식이 자살했다는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전에 집으로 전화해 밝은 목소리로 이야기하던 아들이 오후에 죽었다니, 대명천지에 청천벽력이었을 것이다. 결국 부검을 했다. 목에 끈을 맨 자국이 있었고 손과 무릎에는 가볍게 다쳐 치유 과정에 있는 상처가 있었다. 오른쪽 허벅지에는 2~3일 전에 구두 뒤축에 밟혀 생긴 것으로 보이는 멍이 있었다. 이 멍이 자살하게 된 동기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알 수 없었다.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목을 맨 행위가 병사 스스로 저지른 것이 확실하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자살 판정을 내렸다.

법의학자 입장에서 자살자의 유족들을 납득시키기란 쉽지 않다. 타살보다 자살이라고 판단을 내리는 것이 더 어렵다. 자살한 사람은 말이 없고 증거도 남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유서가 있으면 자살이라고 보기 쉽지만 자살한 사람이 유서를 남기는 것은 30%에 불과하다. 유서가 조작되거나, 자필로 쓴 것이지만 유서라고 인정하기 힘들 정도로 내용이 뚜렷하지 않은 글도 있다.

일단 주저손상(躊躇損傷)이 있으면 자살로 볼 수 있다. 사망하기 전에 머뭇거리다 만든, 치명상이 아닌 손상을 말한다. 자살하는 사람이 단번에 치명적인 손상을 만들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더러 살인자가 주저손상으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한국인은 목을 매거나 독극물을 마시는 자살 방법을 많이 택한다. 타살 후에 목맨 것처럼 위장하거나 치사량의 독극물을 먹이기 어렵다. 또 살인자가 시신을 옮기면 그 흔적이 시신에 남기 때문에 자살과 타살을 구별하기가 비교적 쉽다. 그러나 높은 곳에서 떨어져 죽는 경우에는 자살과 타살, 사고사인지 구별하기 쉽지 않다.

자살의 이유는 본인밖에 모른다. 아무리 어려워도 꿋꿋이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별것도 아닌 이유로 자살하기도 한다. 남이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다. 반대로 별것 아닌 이유를 쉽게 자살의 이유로 인정하기도 한다. 아파트 옥상에서 뛰어내린 중3 소녀의 자살 사건에서 ‘부모의 꾸중을 받았다’면 ‘이유 있다’고 짐작한다. 과연 그럴까.

자살이라고 판단하려면 여러 소견을 검토해야 하는데, 무엇보다 ‘현장’이 중요하다. 여느 사건과 마찬가지로 자살 사건도 현장은 증거의 보고(寶庫)다. 전문가가 보면 쉽게 증거를 확보할 수 있지만, 전문가가 아니면 놓치는 증거가 현장에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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